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작은 도시 깔레 사람들은 영국의 대군과 맞서서 전쟁을 치렀다. 프랑스의 지원병 없이 1년간을 버티며 싸웠으나 식량도 바닥나고 무기도 다 떨어진 가운데 백기를 들게 되었다.
영국 왕인 에드워드 3세는 도시 전체를 도살하려 했지만 깔레의 항복 사절단이 간절히 자비를 구함으로 전쟁에 대해서 책임질 사람들을 요구했다. 그 조건은 도시에 사는 명망 높은 지도자로서 머리를 밀고 속옷만 걸친 채 목에 밧줄을 걸고 도시의 열쇠를 왕에게 바친 후 교수형을 당하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들 두려워하였지만 덕 있는 지도자들이 나서게 됨으로서 깔레 주민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시를 위해 죽음을 택함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단어는 원래 ‘닭의 벼슬’과 ‘달걀의 노른자’를 뜻하는데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하기보다는 알을 낳는데 있다는 말로서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맞는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 사회에는 높은 신분을 이용해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 자녀들이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탈세를 하거나 군에 가지 않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돈이 많고 권력의 배경이 크면 클수록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책임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지배하려는 현실을 보게 된다. 돈이나 권세나 인기나 그 무엇을 막론하고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든다. 이처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무기 삼아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권력이나 돈을 좀 가졌다는 이유로 그렇지 못한 이웃에 대해 소위 ‘갑질’을 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웃에 덕을 베풀며 겸손으로 행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양보하고 희생하고자 하는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국가의 최고 공복이라 하는 대통령부터 사회의 모든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가진 만큼 섬기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가진 것에 걸맞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 앞에는 물론 세상에서도 그에 합당한 책임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는 주님의 교훈에서도 보듯이 신앙인은 세상에 대해서 그만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서 더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데 교회의 중직자일수록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 된 사람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실로 봉사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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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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