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고등학교에서 여학생 축구시합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두세명 빼고 선수들 모두 6피트 가까운 늘씬한 체격을 자랑하는 금발 미인들이었다. 쭉 뻗은 다리로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레 백인들은 참 잘 생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마음 한구석에서 의문이 들었다. 내가 대체 언제부터 백인들이 참 잘 생겼다고 믿게 되었는지 자문을 해보았다. 이어서 왜 많은 한국사람들이 한국적 모습보다 백인의 모습을 미남미녀의 모델로 삼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일어났다.
전 세계에서 한국이 성형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라는 숫자상의 기록도 놀랍지만, 성형의 목표가 무엇이냐도 눈길을 끈다. 한국인들의 미의 기준을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이 쌍까풀 수술과 코 높이는 수술인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전통적 한국 미인의 모습보다 백인의 외모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미인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에서 또는 전시회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정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다. 얼굴이 반듯하고 피부색이 희고, 눈은 쌍까풀 없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코는 적당한 정도로 오뚝하고, 이빨은 고르고 희다. 미인의 중요한 조건인 머리는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릿결이다. 백인 미인들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개화기 조선사람들의 눈에 비친 서양 사람들의 외모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한국 전통적 미모와는 거리가 먼 괴물의 모습이었다. 쑥 들어가 박힌 눈, 비정상적으로 높은 콧대, 머리와 눈은 노랑, 갈색, 빨강, 파랑, 녹색, 회색 등 사람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색깔로 혐오감을 주는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이들을 “양귀(洋鬼, 서양귀신)” 라고 불렀을까?
이런 “양귀” 들이 언제, 어떻게 한국사람들에게 “완벽한 미의 전형”으로 등극을 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조선의 양반들이 야만인이라고 깔보았던 양귀들이 알고 보니 세계를 지배하는 무력과 재력, 지식, 욕심까지 갖춘 승자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였을까?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장차 한국이 이 네 가지 파워를 갖춘 세계의 일등국가로 변신한다면, 세계 각처에서 스칼렛 요한센보다 춘향이의 얼굴처럼 성형수술 해달라는 요구가 쇄도하지 않을까? 결국 ‘미’라는 개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 가치라는 가정을 내려볼 수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어느 사회에서든 힘센 지배자의 생김새가 곧 미의 표본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면서 한동안 잠복해 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학교에서 백인 학생들이 소수계 학생들의 외모를 놀리고 왕따 시키는 경우도 문제이지만, 교육수준 높다는 백인들이 백인의 “선천적 우수성” 을 주장하는 편파적인 가설을 휘두르면서 유색인종들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이 더 큰 문제이다.
축구 경기하는 백인 선수들을 보며 참 예쁘다고 생각한 것은 나 자신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백인들의 오만에 길들여져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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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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