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보육원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뛰쳐나온 소녀는 오갈 데 없는 신세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들이 들이닥치며 쑥대밭이 되던 집이 지옥 같이 느껴졌지만, 홀로서기를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한 10대 소녀에게 바깥세상은 또 다른 형태의 지옥이었다.
마음껏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 소년원이 마치 안식처 같았다고 고백하던 소녀는 감옥을 전전하는 삶을 벗어나라고 이야기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초리였다. 어쩌면 소녀가 본 나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아주 쉬워 보이는 인생을 살고 있었고, 내가 감히 자신의 처지를 공감하는 척 하는 것 자체가 거슬렸을지 모른다.
사실 소녀와 나는 살면서 겪어왔던 어려움들이 너무나 달랐다. 나는 그 소녀에게 사탕을 먹을까 초콜릿을 먹을 것인가의 간단한 선택부터 남은 평생을 어떤 방법으로 누구와 보낼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깨어있는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임을 인식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희망을 심어 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 정답이 있다는 착각을 한다. 말 그대로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인생이다. 어려운 선택에는 그만큼 더 의미 있는 결과가 따르고, 더 쉬운 선택에는 의미가 덜 부여된 결과가 따른다. 25년에 걸쳐 48번의 사법시험을 치렀다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을 때, 그는 자신보다 먼저 변호사가 된 아들의 도움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그가 이룬 꿈이 불가능의 실현인가 시간 낭비인가는 시각의 차이다.
이 세상의 웬만한 것은 하면 되기는 된다. 다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과 긴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 그리고 인생을 얼마나 쉽게 혹은 힘들게 살 것인가는 선택에 달려있다.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 또한 변화가 없기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성공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을 하며 선택의 결과에 집착한다. 하지만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듯이 성공 역시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성공을 해야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가 실패라고 믿는 결과를 두려워하지만, 실패가 우리를 넘어뜨릴 것인가 아니면 더 굳건히 일으켜 세울 것인가 역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든, 제 3자가 나서서 당신의 선택이 옳았네, 틀렸네 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를 봐도 우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은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요즘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성향은 극명하게 갈려있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특정당의 대표가 싫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당의 대표를 지지하고, 과거에 거짓말을 했다는 누명을 쓴 대선주자가 얄미워서 듣기 좋은 공약만을 남발하는 주자를 위해 표를 던진다. 또 정치인들은 권력의 향배에 따라 자신들의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꾼다. 누구를 뽑아도 국가를 위한 완벽한 해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나와 정치에 관한 토론을 벌이게 된 한 비법조인에게 헌법재판과 일반재판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감정이 격앙된 그는 자신이 어딘가에서 읽어본 바를 토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사법부의 판결방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내 이론이 틀리다며 완강히 부정했다. ‘Post-truth’(탈 진실) 시대의 여론은 더 이상 객관적인 사실로 형성되지 않는다. 감정의 싸움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감정에 따라 한 선택을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 그런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삶에는 최선의 선택이 있을 뿐 완벽한 선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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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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