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LA로부터 1시간정도 떨어진 산타 클라리타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냈다. 한인이 많은 지역도 아니고 지금처럼 K-팝이나 드라마가 유행한 때도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토요일에는 한국학교에 가서 한글도 열심히 배웠다. 부모님과 한국어로 소통을 했고 방학이 되면 한국의 친척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줄은 몰랐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한국 대학들이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외국인 교수에 대한 수요가 늘어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왔다. 한국어도 서툴고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저함도 있었지만 모국에서 일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데다 외국 태생이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한국에서 묘한 위치에 있다. 어떤 때는 한국인으로 어떤 때는 외국인으로 여겨진다. 그 당시 내가 있던 학과의 교수들은 대부분 50대의 남성들로 외국 태생은 나 혼자였고 여교수는 나를 포함해 둘 뿐이었다. 강의 외에는 학과 교수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고 나한테 배정된 영어 수업 외에는 별도로 요구하는 것도 없었으니 편하긴 했지만 난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그래도 이왕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기로 했는데 아웃사이더로만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학과에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여교수나 외국인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서로 애로 사항을 나누기도 했고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한국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도 많이 했다.
첫 안식년을 맞아 스탠포드 교정을 거닐며 지난 10년간의 한국생활을 되돌아보니 그래도 나름 기여한 부분들도 있고 나 같은 한인 2세들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다.
우선 전문 인력으로서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한국은 외국인 인재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20여년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저숙련 노동을 많이 수입해 왔지만 이젠 전문 고급인력이 필요한 때이다.
2016년 9월말 기준 외국인 전문인력은 약 5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배타적이고 이민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 않은 한국에 대해 외국의 인재들이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어렵사리 들어온 외국 인재들조차도 오래 못 있고 다시 한국을 떠난다. 한편 순수 외국인에 비해 한국문화에 익숙하고 고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재외동포들은 한국이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또한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순수 외국인보다는 재외동포를 편하게 생각한다. 연세대 하계프로그램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 부서에는 나와 백인 교수 한명이 있고 직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언어나 문화면에서 내가 친숙해서인지 외국인 학생이나 교수 관련한 문제가 있을 때 직원들은 주로 나와 의논했다. 한국인 직원들과 외국인 교수들 사이에 오해가 생길 때면 나는 중간에서 문제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최근 들어 한국으로 오는 재외동포 숫자가 늘고 있고 내 주위만 봐도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역시 10년 전의 나처럼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주저함과 불안함이 있다. 한국의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또 여성의 경우는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많다.
조기 유학생의 경우도 한국에 대한 애착은 크지만 이미 한국문화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귀국이 조심스럽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권하고 싶다. 재외동포로서 한국에서 일하고 사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동시에 기여할 틈새를 잘 찾으면 한국사회에 기여할 부분도 많다. 순수 한국인이나 외국인과는 다른 경험과 시각을 가진 재외동포 전문 인력은 한국에 중요한 자산이며 정부도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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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문 / 연세대 국제학부 교수 · 스탠포드 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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