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지만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물론 한국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는 아니었고, 미국 교과과정을 영어로 가르치는 외국인 학교라 큰 문제없이 잘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할 때가 되자 고민에 빠졌다.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내 한국어 실력으로는 일반대학에서 수업을 듣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왔고 대학원도 미국에서 마쳤다.
그때와 비교해 보면 오늘의 한국 고등교육 체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한국정부가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대학들도 경쟁적으로 국제화를 시도하였으며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영어로 수업을 듣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이화여대, 고려대, 한양대, 경희대 등 여러 대학에 생겨났다. 따라서 외국에 안가도 한국대학에서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대학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 학생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내가 재직 중인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학부도 이러한 고등교육의 국제화라는 흐름 속에서 설립되었다.
언더우드 국제학부에는 국내 학생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외국인이나 재외동포들이 지원할 수 있는 트랙이 별도로 있어 각국에서 온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또한 순수 외국인 교수가 많기 때문에 한국의 전형적인 강의 위주의 딱딱한 수업방식이 아니라 미국 대학에서처럼 교수와 쉽게 대화하면서 배울 수 있다. 1학년 학생은 철학, 사학, 문학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중심의 공통 교과과정을 듣게 되고 2학년이 될 때 정하는 전공도 16개나 되어 선택의 폭이 넓다.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 만일 이러한 국제학부가 있었다면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을 것 같다. 대학원은 미국으로 갔을지 몰라도 학부는 한국에서 했을 것이다. 어린나이에 한국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도 많았고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한국어도 더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한국에 관심이 있는 코리안 아메리칸 학생들에게 한국대학의 국제학부는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미국의 명문대학교 보다는 아직 부족할지 몰라도 국내 대학의 국제학부는 웬만한 미국대학에 못지않은 학생과 교수진 그리고 교과과정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의 사립대학은 물론 대부분의 주립대학보다도 학비가 싸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도 적고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활하는데도 편리하다.
더구나 국제학부에는 외국인 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있어서 미국처럼 다인종, 다문화에 익숙한 코리안 아메리칸에게는 문화적, 심리적인 거리감도 크지 않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소통 능력을 중시하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교육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강의를 통해 국제적인 시야도 넓힐 수 있고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 영어로 수업을 들으면서 한국 친구들도 사귀고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접하며 대학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한 코리안 아메리칸 학생은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또한 졸업 후에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거나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와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면 국제학부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학연 네트웍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한국에서 외국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배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나처럼 미국대학에 가지 않고 한국대학에서 국제학부를 다니기로 한 것이다. 이런 옵션을 가질 수 있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도 그런 기회가 있었더라면 내가 원했던 삶과 목표들을 더 원활하게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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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문 / 연세대 국제학부 교수 · 스탠포드 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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