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썸머캠프 일정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출퇴근 시간도 정상화되니 방학 마지막 날 밀린 일기 몰아 쓰는 마음으로 지난 방학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10년째 미국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이번 방학이 좀 달랐던 이유는 한국에서 친정오빠네 가족이 처음으로 놀러와 함께 여름을 보냈기 때문이다. 오빠 네의 미국행이 결정된 몇달 전부터 우리 아이들은 들떠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며칠 있으면 사촌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꼭 꺼내고는 했다.
핏줄의 힘이 그런 건지, 영어가 편한 우리 아이들과 한국어가 편한 오빠네 아이들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던 어른들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만난 첫날부터 한방에서 같이 자겠다 할 정도로 금방 친해졌다. 처음 열흘간 함께 여행도 하고 바닷가에도 놀러가고 수영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만 가득한 여름방학을 만들게 될 듯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함께 썸머캠프를 다니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갈등이 생겼다. 나이는 한두 살 더 많지만 영어가 걱정인 조카들에게 혹 도움이 될까 우리 아이들을 짝지어 같은 캠프에 보낸 게 실수였다. 한국에서 영어말하기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나름 실력을 인정받았던 큰 조카는 미국 현지인들의 영어가 잘 들리지 않자 주눅이 들었는지 캠프 내내 입을 닫아 버렸다. 우리집 큰 아이는 본의 아니게 통역사가 되었지만 사촌언니 옆에 붙어 내내 통역을 해주기보다는 점점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영어로 얘기하며 따로 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함께 놀다가도 쉽게 다투고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올케 언니와 나는 각자의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대화 끝에 캠프생활 몇 주간 두 아이들 모두 엄청난 마음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자란 큰 조카에게 ‘언니’란 뭐든지 동생보다 더 잘하는 사람인데 사촌 동생보다 영어를 못한다는 게 그래서 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쿨하게 넘길 수 없는 문제였었나 보다. 그러다보니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집에서는 뭐든 더 가르치려들며 우두머리 행세를 했고, 미국에서 자라 한두살 차이는 다 친구로 지내는 우리 아이들은 사촌언니의 그런 행동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한국 문화로 ‘나이와 서열 문화’를 들며 재밌게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느낀 어려움도 비슷한 것 같다.
몇 년 동안 연애하며 서로를 많이 알고 있다 생각한 후 결혼해도 한 집에서 살다보면 싸우게 마련인 것을, 거의 본 적도 없었던 사촌들과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같은 집 같은 캠프에서 하루 종일 함께 했으니 갈등이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문화의 차이라는 건 그저 다른 것이지 한쪽이 더 좋고 다른 한쪽이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기에 나와 올케언니는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해주도록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나이와 서열에 관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를 설명해주었고, 갈등이 아주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싸우다가도 금방 깔깔거리며 큰 마찰 없이 마지막 날까지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나는, 온전히 자기 앞가림을 하기엔 본인도 아직 어리면서 ‘언니로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라며 눈물짓는 큰 조카를 배웅하면서,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묻고 ‘빠른’ XX 년 생을 따져 관계의 서열을 정리하고 보는 한국의 나이중심 문화는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언니나 선생님 부모 등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똑같이 그것을 동생이나 어린 사람들에게 강요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보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정립해서 독립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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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김 / 현대오토에버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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