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4성 장군 부부가 공관병들에게 도를 넘는 횡포를 부렸다는 뉴스가 보도 되면서 한국은 물론 미주한인 사회에서도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었다. 모두들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고, 땅콩 회항사건을 비롯해 과거에 일어났던 갑질들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한창 꿈 많고,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 호출용 전자팔찌까지 채웠다니 할 말을 잃었다. 그러한 굴욕 속에 지내온 장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부모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참으로 화나고 슬픈 일이다.
호출용 팔찌라는 말에 오래 전 내가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물론 공관병들이 받았던 학대 차원은 아니지만 모욕감 같은 것이 아직도 씁쓸하게 남아있다.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 시댁에 들어가서 잠시 생활한 적이 있다. 60대 중반의 시아버님은 며느리가 들어오자 호출용 벨을 설치했다. 한번 울리면 식모, 두 번 울리면 며느리, 즉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큰 소리를 내야 들릴 정도의 큰 집도 아니었고, 또 함께 사는 시누이나 시동생은 호출 벨로 부르지 않았다.
하여튼 시아버님은 안방 아랫목에서 수시로 벨을 눌렀다. 물론 대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고 잔심부름을 위한 호출이었다. 물 떠와라, 양말 가져와라, 대접에 담아 놓은 틀니 가져와라 등등. 벨이 울릴 때마다 식모를 부르는 건가, 나를 부르는 건가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고, 두번 울릴 때는 쪼르르 달려가면서 얼마나 어색했던지. 주인이 부르면 달려가는 개가 연상돼 모욕감을 느꼈다. 남편에게 나의 느낌을 얘기했지만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 후 미국에 오고 9년 만에 처음 한국에 갔는데 그 호출용 벨이 여전히 긴 줄을 늘어뜨리며 같은 벽에 있었다. 식모와 막내며느리를 부르는 벨일 것이었다.
별안간 남편이 가위를 들고 안방으로 가더니 식구들 보는 앞에서 “왜 아직도 이런 게 있느냐”며 줄들을 싹뚝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9년 전 처리 못했던 일이 남편의 마음에서 오랜 동안 걸렸었던 것 같았다.
한국의 장군 부부를 법적으로 처벌한다고 해서, 또 내가 경험했던 호출용 벨은 그 줄을 잘라 버린다고 해서 갑질이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다. 한국의 문화가 바뀌고, 사회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근절될 수 없다.
지위 높은 자가 낮은 자에 대해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 대해서 마음대로 갑질을 하고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아직도 존재하는 남존여비 사상. 그래서 아들보다 딸의 부모들이 혼수에 더 신경을 써야하고, 며느리를 마치 한 단계 높은 식모 내지 일꾼으로 은연 중 대하는 의식. 모두가 청산해야할 적폐이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사람은 모두 동등하고 귀중한 존재이며, 누구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올바른 의식이 뿌리를 내려야만 갑질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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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자 / 전 한인가정상담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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