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족 이야기가 가끔 글에 실리면 아내는 좀 찜찜해 한다. 그러나 수필은 나와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성찰할 수 있는, 피천득 선생의 말대로 고백의 문학이다. 우리는 한번 뿐인 삶을 우왕좌왕 않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지만 인생현장에서 부딪치다보면 누구나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며칠 밤을 생각해서 택한 결과인 데도 말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 판도라 속의 선물보따리 이야기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도록 하면서도 나머지 하나인 희망을 붙잡아 보려는 안타깝고 불쌍한 형상으로 만든 신의 장난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재작년에 딸네집 근처의 콘도미니엄으로 이사를 했다. 말이 콘도이지 맨 꼭대기 층의 코너에 위치하여 싱글 하우스처럼 보였다. 거실에서 대도시 고충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다운타운으로 가는 메트로 역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장소였다.
그 곳에서 한동안 살아 보니 집안에 있으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어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적었다. 딸과 손자들한테 미안했지만 콘도를 처분하고 다시 단독주택으로 이사 왔다. 그런 와중에 시간적, 경제적 불이익이 따라왔다. 내 삶 중 또 하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한편 얻은 것도 있었다. 손자들을 자주 만났고, 근처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도시 중심지의 미시간 호 근처에서 독립기념일 전날 밤에 펼쳐지는 장엄한 불꽃놀이를 콘도 거실에서 편안히 볼 수 있었다.
그냥 살면 인생이 싱겁다 한다. 잘못되었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답도 없고 불안 투성이인 삶에 맞서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시행착오는 잘 알지 못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 확실한 과학지식이나 정확한 수치의 근거 보다는 어림짐작으로 여러가지 방법을 시행해 보는 행동패턴을 뜻한다. 따라서 빈번한 실패로 인한 좌절, 낙심, 절망이 따르지만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 바라는 바를 성취하거나 골치 아픈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시행착오는 효과가 있지만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모세가 유대민족을 젖과 꿀이 넘치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갈 때 인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보았으면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하지 안았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즉 경우에 따라서 모르는 일을 여러 번 시행하기 보다는 경험 있는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게 더 효과적인 때도 생긴다.
그러나 인간의 뇌세포는 자신을 방어하도록 짜여져 있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그런 DNA가 인간, 특히 남자들을 완고하게 만들었기에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는지 모른다.
양극성 장애(특히 조증상태)와 자애적 망상성격을 가진 환자들이 자주 시행착오를 한다. 충동적, 저돌적 행동과 정서적 불안, 그리고 현실에 어긋나는 부풀어진 자아능력에 대한 확신이 그들을 잘못된 길로 몰고 간다. 잘하고 있던 직장이나 학교, 안정된 가정을 버리고 엉뚱한 삶의 방식을 택한다.
신의 계시와 부름을 받아 세상의 빛이 되겠다며 성직자로 변신한 중년 남자, 어려운 의대 입학 후 공부는 팽개치고 자기 머리만 믿고 주식시장에 뛰어든 젊은 의학도, 글재주가 있다는 주위 사람들의 칭찬에 고무되어 남편과 자식들을 등한시하고 골방에 박혀 글만 쓰던 중년여자, 이들 모두 실패의 상처 후에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인생 여정 중 무언가 시도할 때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 힘, 근면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혹 자신의 결정이 암울하고 비관적 방향으로 갈지라도 삶의 밝은 면과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태도, 예를 들면 구름 뒷면에는 반드시 햇빛이 비친다는 실버 라이닝 사고가 중요하다.
삶은 가끔 매우 힘든 계기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고 정제시킨다. 매일의 삶이 고달플지라도 삶속에서 어떤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배우고 훈련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
천양곡 / 정신과 전문의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