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삶의 좌절과 의심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신앙과 인격을 연단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인류 역사에 출현했던 대부분의 위대한 인물이 고난을 통하여 도약하고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그때마다 위대한 인물은 고난의 의미에 대하여 의미심장하게 묻고 대답을 구했다.
랍비 아키바(Akiva)는 이스라엘 3대 랍비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집안은 가난했고, 어려서 부터 양치는 목동으로 품을 팔며 고단하게 살았다.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양치기에 불과했던 아키바가 위대한 랍비가 된 동기가 있다. ‘물음’이다.
마흔이 다 된 어느 날이다. 아키바가 우물가에 섰다가 문득 움푹 파인 돌을 보았다. 아키바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가 이 돌을 움푹 파이게 했을까요?”
“날마다 돌 위에 떨어진 물방울 때문이지.” 나이 많은 아낙네가 말했다.
아키바는 전율했고 깨달았다. “만일 부드러운 물방울이 단단한 돌을 움푹 파이게 할 수 있다면, 토라의 말씀이 나의 심령에 떨어질 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후로 아키바는 토라를 열심히 공부하여 위대한 랍비가 되었다
감리교의 창설자 존 웨슬리는 무혈혁명으로 영국을 구했다고 평가받는 18세기 영미(英美)의 영적 거인이다.
웨슬리는 조지아 선교에 관심이 많았다. 위험한 바다도 원주민과의 문화차이도 웨슬리의 용광로 같은 열정 앞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1735년이 되었을 때, 웨슬리는 조그만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조지아로 갔다.
하지만 웨슬리의 조지아 선교는 1년도 채 안 되어 실패로 끝났다. 웨슬리는 가는 곳마다 인디언 원주민과 다툼을 일으켰고 영국에서 이주한 동족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1736년 여름, 웨슬리는 거의 죽음에 이를 만큼 기력이 소진한 채, 영국으로 귀국하는 사무엘 호에 지친 몸을 실었다. 사무엘 호는 신앙인, 장사꾼, 공무원, 군인, 이주민, 죄수 등으로 인산인해였다. 웨슬리는 군중 속에 파묻힌 채 선실 밑바닥에 엎드려 익명으로 있었다.
순항하던 배가 대서양한 가운데로 나가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났다. 단숨에 삼킬 듯이 뛰어오르는 거대한 파도는 사무엘 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배는 널뛰듯이 뛰며 심히 요동했다.
웨슬리의 내면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두려움에 눌려 배 맨 밑바닥에 엎드린 웨슬리에게 문득 평화스런 찬송가가 들려왔다. 놀라 일어난 웨슬리는 찬송가의 진원지를 찾았다.
검푸른 파도가 교만스럽게 넘실거리며 하얀 거품을 쉬지 않고 쏟아 붓는 갑판 위가 진원지였다. 거기서 모라비안 교도들이 한데 어울려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웨슬리는 이들에게 물었다.
“절대위기 상황에서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담대함과 평안이 어디서 나옵니까?”
리더인 아우구스투스 슈팡겐베르크는 대답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웨슬리는 그 자리에서 회심했고, 영적 거인의 면모를 갖춘 지도자로 다시 섰다.
흔들릴 때 진지하게 물으면 누구나 다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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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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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글을 읽어보니 왜 기성종교들이 쇠퇴하는지 알겠네요. 옛날에는 교육 수준이나 자각이 낮아서 이런식의 가르침이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만 지금은 이런이야기로는 공감을 얻지 못해요. 위기상황에서 하느님만 믿고 땨르라는 식의 가르침은 현실과 동떨어져요.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