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정의에 관한 문제는 정치사회 철학의 핵심이다. 정치 사상가들이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사회를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
정의에 관한 무수한 책들이 출판되었고 그 중에는 베스트셀러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받을 수 없다.
미국사회에서는 정의의 핵심을 공평(Fairness)으로 보고 있다.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정의의 핵심은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거나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로 부터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가 하는 것들이다. 받는 것이 복지정책의 핵심이 된 것이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는 항상 불공평하게 느끼게 되어 있다. 또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 자기를 지지해주면 더 많은 것을 받게 해주겠다는 허황한 약속으로 가난하고 눌린 사람들의 처지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반감 또한 미국사회의 한 단면이다.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떼어다가,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들에게 퍼주는 것에 대한 불만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이로 인한 정부와 복지정책에 대한 불신이 위험한 지경에 이른 느낌이다.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가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결정적인 변수가 된 것이 아니었을까?
정의의 핵심이 과연 받는 것일까? 정의의 원칙을 살펴보면 그 중 하나가 ‘주는 것’이다. 줄 수 있는 걸 주라는 것이다. ‘받는 것’에 정의의 초점을 맞추는 경우, 사회는 주고받는 연속 상에서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사회의 꿈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정의의 원칙이라는 깨달음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정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동료 교수가 지난주 갑자기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를 가도 나에게는 소식을 남기곤 했는데, 소식도 연락도 없었다. 강의실에 휴강한다는 표지도 붙어있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이리저리 연락을 시도 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주말과 월요일을 불안하게 지내고, 화요일인 12일 오후 늦은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실 뒷문에 그가 슬며시 나타났다. 플로리다에 갔다 왔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이재민 구호품을 한 트럭 싣고 템파에 가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다 왔다고 했다.
물에 잠긴 곳에서 일하다가 전화기를 물에 빠뜨려 연락을 할 수 없었고, 가기 전에 작은 쪽지를 내 사무실 문에 붙여 놓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문 위에 ‘플로리다’라고 쓴 쪽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이가 없었지만 반가웠다. 이런 사람이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기보다는 주기를 우선 하는 이런 사람들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는 9.11 때도 자원봉사자로 들어가서 많은 일을 했고 아직도 그 후유증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줄 수 있는 것을 기꺼이 주는 이런 사람이 넘치는 사회를 그려 보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 이 정신이 바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참된 힘이라는 생각이다. 허리케인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작은 체크를 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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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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