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수 있다’…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 5
▶ ■ 미 의회와 연방 법무부 조사 착수
1976년 10월24일 WP, 돈 받은 정치인들 이름까지 게재
사태의 심각성에 연방 법무부, 차관보 지휘 대배심 구성
연방상원은 상·하원 의원 전원을 조사대상에 올려 ‘전율’
-프레이저위원회 청문회
박동선과 김한조, 그리고 문선명, 수지 박 톰슨, 존 니데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수상한 행적과 한국의 불법적 대미 로비 의혹들이 연일 폭로됐다. 모순과 혼돈이 뒤섞인 폭풍의 언덕을 넘고 있었다. 온몸이 스멀스멀한 통속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한국 정부와 중앙정보부가 방한 초청을 포함한 선물이나 현금 공세로 미국 의원들의 환심을 사고 ‘불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Influence Peddling)’ 하려 했다는 보도에 미국은 들끓었다.
일찍이 민주정치를 구현한 미국은 여론의 나라였다. 의회는 침묵하기가 어려웠다. 1975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 소위원회가 한국 인권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했다. 비록 소규모의 자체 조사였지만 한국 문제에 대한 미 의회 조사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이 소위는 75년 6월10일 이재현의 증언을 청취하는 등 76년 말까지 독자적으로 한미관계를 조사했다. 이재현은 주미대사관 공보관으로 있다가 1973년 망명한 인물로 이 청문회에서 “KCIA가 미 의회 지도자들을 매수하려 했고 김동조 주미대사가 의회를 방문하기 전에 1백 달러 지폐를 봉투에 넣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위원장인 프레이저 의원의 이름을 따 ‘프레이저 위원회’로 불린 이 소위는 향후 박정희 정권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된다.
-워싱턴 포스트의 폭로
1976년 10월 24일, 코리아 게이트의 대문이 열렸다. 워싱턴 포스트의 1면에 “서울이 미국 관리에게 수백만 달러를 줬다(Seoul Gave Millions to U.S. Officials).”는 충격적인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의 현금을 90여 명의 미 연방의원과 공직자들에게 전달하는 매수공작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받았다는 정치인들의 이름까지 게재됐다. 나중에 법무부가 박동선의 집에서 압수한 서류 중에서는 115명의 명단이 나오기도 했다.
미 국민들은 분노했다. 행정부에서 일어난 워터게이트의 먹구름이 채 걷히기도 전에 입법부가 연루된 사건이 터지자 언론들은 호재를 만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물론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한국 관련 보도를 연일 쏟아냈다.
코리아 게이트를 집중 보도한 미국 신문들. 워터게이트 사건에 이어 입법부가 연루된 사건이 터지자 언론은 연일 포화를 퍼부었다(왼쪽). 1995년 9월18일자 워싱턴 한국일보 1면. sbs 드라마‘코리아 게이트’ 촬영차 유인촌, 김미숙, 황신혜, 이혜숙, 조경환 등 12명의 탤런트들이 워싱턴을 방문한 소식을 싣고 있다(오른쪽).
-법무부 대배심 구성
연방 법무부는 벤자민 시빌래티(Benjamin R. Civiletti) 형사담당 차관보가 지휘하는 대배심을 76년 구성했다. 연방정부가 드디어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대배심은 판사 없이 검찰관이 주재하며 통상 16-24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되며 유·무죄를 가리는 게 아니라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대배심에서는 사건과 관련된 증거나 증언을 수집해 소환장이나 영장을 발부하며 이 때 모든 증인들은 변호사를 대동하지 못한다. 즉 모든 걸 비공개로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대배심은 검사가 맡는데 비해 차관보가 직접 지휘를 맡아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미 당국의 관심과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대배심의 주 타깃은 박동선과 김한조, 그리고 리차드 핸나(Richard T. Hanna)와 아토 패스맨(Otto E. Passman) 전 하원의원이었다.
대배심은 1년의 조사 끝에 77년 8월26일, 4명을 기소했다. 박동선에게는 모의와 뇌물 증여, 불법 대가 제공, 우편법 위반에 의한 사기, 미 기관 부패, 외국인 로비스트 미등록 등 36개 혐의가 적용됐다.
김한조는 미국에 대한 사기 공모와 대배심에서의 허위진술 혐의로 기소됐다. 리차드 핸나 전 의원은 뇌물과 불법 대가 수수, 외국 에이전트 미등록, 우편법 위반 혐의가, 아토 패스맨 전 의원에는 공모와 뇌물 및 불법 대가 수수혐의가 적용됐다.
연뱅 대배심이 기소를 하자 영국에 체류하던 박동선은 한국으로 도망가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시빌래티 차관보는 78년 1월 폴 미첼 검사와 함께 박동선을 데리러 한국을 방문했다. 사전에 한국 측과 교섭한 뒤에 방문한 것이다. 서울의 미 대사관에서 박동선을 인터뷰한 시빌래티 차관보는 박에게 면책특권을 주는 대신에 미국에 와서 법정 증언을 하는데 합의했다.
-암울한 95기 의회 개회
1977년 새해가 밝았다. 2년 단위로 활동하는 95기 의회가 개회했다. 하원의장에는 토마스 P. 오닐(민주)이 선출됐다. 새로운 출발로 흥분해 있어야 할 워싱턴 DC 의회의사당은 그러나 암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코리아게이트 때문에 문을 열자마자 흔들렸다.
미 의원들이 한국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미국인들의 여론이 악화되자 의원들은 안절부절 못했다. 하원 윤리위원회는 처음부터 조사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었다. 자칫 코리아 게이트를 방치했다가는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위기의식이 연방 의회를 감쌌다. 자신들에 쏠린 의혹을 해명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외면할 것이 뻔했다. 미 의회 정치의 위기를 감지한 것이다.
의회는 결국 제 95 회기 첫 사업으로 코리아 게이트에 대한 조사 카드를 꺼냈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외교위)는 2월3일 국제기구 소위(프레이저위)에 한미관계에 대한 전면 조사권을 부여했다.
이어 2월9일 하원에서는 252 결의안(HR 252)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국 정부의 미 의회 의원 매수혐의를 윤리위원회가 조사한다는 내용이다. 435명의 의원 중 388명이 참석했으며 반대는 한명도 없는 전원 찬성이었다. 그 상황에서 반대표를 던질 의원은 없었다.
다음해인 78년 초 상원 윤리위에서도 위원장과 부위원장 명의로 코리아 게이트에 대한 자체조사에 나섰다. 하원은 위원장-간사 체제였지만 상원은 다수당에서 위원장, 소수당에서 부위원장을 맡은 체제였다.
-상하원의원 전원 조사대상
코리아 게이트에 대한 조사는 다각적으로 진행됐다. 연방 법무부는 물론 의회에서도 하원 프레이저 위원회, 그리고 하원 윤리위, 상원 윤리위에서 각각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조사의 목적과 영역은 각기 달랐다.
법무부나 FBI의 수사 초점은 미 의원들의 불법자금 수수에 맞춰져 있었다. 이에 비해 프레이저 위원회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과 정치경제, 군사 문제 등 한미관계 전반에 관한 조사 역할을 부여받았다.
하원 윤리위원회는 전직과 현직 하원의원 및 참모, 가족들의 비행 조사가 주 목적이었다. 즉, 한국 정부의 하원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적 영향력 행사’(Influence Peddling)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
상원 윤리위원회는 상원의원이 관련된 내용만 조사를 맡았다. 박동선이 로비를 한 주 대상은 하원의원이었다. 그러나 하원의 조사를 토대로 김형욱을 비롯한 각 증인들에게 상원의원들의 관련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윤리위를 열게 된 것이다.
이번 의회 조사는 특이했다.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원 435명, 상원 100명 등 상하원의원 전원이 조사 대상이었다. 그만큼 규모가 컸다.
1789년 제1대 의회가 구성된 이래 전무후무한 전율이 캐피탈 힐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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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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