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움직이지 말고 배에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서 무서워 떨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돌이켜 보면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이에 따른 민심 이반이 초래한 박근혜 정부의 침몰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그동안 한국을 선진국이라 믿어왔던 국민들이 ‘우리는 여전한 3류 국가’라는 자괴감에 빠지는 등 심리적 혼란을 겪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재미학자로서 ‘밖에서 본 한국의 모습’을 책으로 담아내보자는 제안이었다. 한국어로는 처음 쓰는 책인데다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려니 주저되기도 했지만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수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을 쓰는데 있어서 그동안 밖에서 보아온 한국의 모습뿐 아니라 2015년 가을부터 연구 안식년을 맞아 8개월간 한국에 머물며 보고 경험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 기간 유심히 한국사회를 관찰하던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한국사회 곳곳에 만연한 피상성 (superficiality)이었다. 지난 수십년 간 초고속 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겉모습은 무척 화려해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거품 탓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 곳곳에 피상적인 모습들이 만연해 있었다.
우선 인간관계를 보자. 한국에선 3.6명만 거치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한 조사결과가 말해주듯 한국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히고설킨 수퍼 네트워크 사회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수퍼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하여 때로는 원하지도 않는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골프를 치고 밤낮으로 경조사를 챙기며 시간적, 재정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인맥관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들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의미없는 식사약속, 모임을 줄인다면 시간, 건강, 금전적으로도 이익일 텐데 나만 네트워크에서 소외될까 하는 염려 때문에 마지못해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돈독한 관계가 형성되기는커녕 오히려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수퍼피셜한 관계만 늘어가는 것 아닐까.
정부의 규제와 감시도 마찬가지이다. 투명성, 객관성이라는 명목 하에 불필요한 규제는 수없이 늘어났지만 그 처벌은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고 막상 규제를 받아야 할 대상이나 집단은 요령껏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또한 곳곳에 설치된 CCTV 와 차량 블랙박스 앞에 보호받아야 할 개개인의 사생활은 발가벗겨지고 정작 투명해야 할 부분들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요령과 편법이 난무하고 전관예우나 관피아가 성행한 탓에 규제와 감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피상적인 수준에 멈추어 결국 세월호 침몰과 같은 엄청난 참사를 낳은 것이 아닌가.
교육도 모두가 똑같은 방식의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산업화시대의 표준품 생산에 머물러 있으며 젊은이들은 정작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틈도 없이 비슷비슷한 스펙쌓기에 지쳐가고 있다. 특히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폐쇄적인 문화에 스스로를 가두면서도 한국판 실리콘 밸리를 만들겠다는 자기 모순,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국력에 어울리지도 않게 아직도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멘탈리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연구 안식년 동안 한국에서 만났던 많은 지인들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이 이제 뭔가 한계에 다다르고 벽에 부딪친 것 같은 느낌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과연 그 돌파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라 불안하다고.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공유하면서 이 책을 통해 ‘헬조선은 답이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우리 함께 더 나은 한국을 만들어 가보자’라고 말하고 싶었다.
경제는 성장과정에서 쌓인 거품을 걷어내야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넥스트 코리아’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 곳곳에 쌓인 피상적 요소들이 먼저 걷혀져야 한다.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수퍼피셜 코리아를 넘어 수퍼 코리아를 만드는 일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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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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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국의 제일 큰 문제는 인구감소입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면 이민을 많이받기전에는 별다른 대책이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