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나파밸리 불타는 나파밸리](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7/11/01/20171101220317591.jpg)
김희봉 /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핵폭탄을 머리에 인 서울에서 한 달을 보냈다. 자욱한 황사와 불투명한 정국으로 서울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핵폭탄 급 화마가 내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에서 터졌다. 얼마 전 인천발 아시아나기가 북가주 해안에 닿는 순간, 발아래 산하는 온통 매캐한 산불 연기로 자욱했다.
나파(Napa)가 불탔다. 포도의 명산지 나파와 소노마 밸리, 멘도시노까지 탔다. 20여개 산불이 동시다발로 타오르며 삼림과 주거지 가리지 않고 삼켜버렸다. 40여명이 사망하고 수천 채 가옥이 소실되었다는 보도다. 1만여 명 소방수들이 사투를 벌였다. 시속 70마일 강풍이 30피트가 넘는 불벽을 일으키고 눈 깜짝할 새 축구장만 한 면적을 초토화시켜 사상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왜 하필 이때 북가주에 대형 화재가 일어난 것일까? 올 봄의 폭우 탓이다. 7년 가뭄 끝에 총 94.7인치 기록적인 강우량이 쏟아졌다. 그 덕에 수목이 엄청 자랐다. 게다가 올 캘리포니아는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건기가 막바지인 10월, 디아블로 강풍이 몰아치자 불씨 하나로 마른 수묵들은 모두 땔감이 되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근래 북미 대륙에 대형 산불이 부쩍 늘었다. 1988년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송두리째 삼킨 세기적 화재를 필두로 큰불이 자주 일고 있다. 15년 전 보다 피해 면적이 2배나 늘고 진화에만 연 30억달러가 든다고 한다.
왜 대형 산불이 잦을까? 물론 지구 온난화로 극심해진 가뭄과 고온이 주원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요인은 사람들이 자꾸 숲 속에 주거지를 넓히기 때문이다. 산불은 사람에겐 재난이지만 숲에서는 자연의 순리이다. 때를 따라 하늘은 번갯불을 내려 묵은 잡목들을 말끔히 태운다. 그리고 잿더미 양분 위에 새 나무들을 키운다. 숲을 건강하게 재생시키는 조물주의 뜻이다. 그래서 산불은 숲을 순환시키고 균형을 맞추는 촉진제다.
어떤 산불에도 솔방울 속 씨가 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산불 연기를 맡으면 식물들은 마치 새색시들처럼 발아를 서두른다. 유클라팁스 나무에 기름이 많은 까닭도 산불에 스스로 땔감이 돼 열등식물들의 과잉 번식을 막으려는 오묘한 섭리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꾸 산과 숲 한가운데 떼 지어 집을 짓는 것이다. 나무의 영토에 무단 입주하는 격이다. 그래서 미 산림청은 집과 사람을 보호하느라 작은 산불도 무조건 진화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 결과, 숲은 노후하고 건강이 약화돼 병충해에 취약하고 튼실한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되었다.
비록 재해를 당했지만, 산불이 일어나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포도 농사를 짓는 것이 나파 벨리의 미래일 것이다. 나파 벨리는 천혜의 포도 산지다. 샌 파블로 만에서 새벽마다 올라오는 촉촉한 안개와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포도송이를 영글게 한다. 나파란 인디안 말로 ”풍성한 곳”이란 뜻. 이 비옥한 땅에 1880년, 첫 포도원 베린저와 잉글눅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나파는 유럽의 포도 주산지들과 경쟁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지금은 나파 와인의 맛이 유럽 와인을 능가한다는 평이다. 이는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 나파 특유의 자연 농법과 저장 기술 덕이라고 한다. 나파 와이너리들이 이번 재해를 극복하고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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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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