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리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한 유명 인터넷 육아 카페에 7살 딸아이가 수학학원 입학시험에 떨어져 속상하다는 글이 올라온 후,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둔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이 불이 났다. “시험문제가 세 자리 덧셈이었다잖아. 정말 충격 아니니?” “한국나이 7살이면 만 5-6살인데...” “그럼 세 자리 덧셈문제를 풀어내는 그 또래 애들이 학원에 들어갈 만큼 많다는 거네?” “아, 우리 애는 이미 늦었나? 뭐부터 시켜야하는 거야? 영어? 수학?”
흥분한 친구들의 대화에 “야야, 됐어. 어려서부터 스트레스 받으면 키 안 커.” 무심한 듯 한마디 내뱉었지만 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TV에서나 소개될 법한 조기교육, 영재교육의 사례가 친구의 친구집 이야기 정도로 가까워진 요즘, 엄마의 교육열과 정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시대를 살면서 퇴근 후 아이와 뒹굴거려 주는 것 이외엔 시간도 체력도 받쳐주지 않는 나는 엄마로서 직무유기 아닌가.
부랴부랴 대화를 마무리하고, 잠깐 한눈판 사이 벽면 가득 스티커 조각들을 붙여가며 재밌다고 낄낄대는 32개월 아이를 책상에 끌어다 앉혔다. “OO이한테 사과 다섯 개가 있었는데 엄마가 세 개를 더 줬어. 그럼 이제 사과가 몇 개가 된 거야?” “음.. 난 괜찮아. 엄마 먹어.” 그럼 그렇지...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주 들린 한국서점에서 저 쓸데없는 스티커북 대신 무심코 지나쳤던 ‘2세 수학’ 학습지를 사 오는 건데! 그저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평정심 가득한 얼굴로 세상 쿨한 척은 혼자 다 하다가도 때때로 불안하고 복잡해지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자녀 학업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집착이 유별난 ‘강남 엄마들’만의 이야기로 들릴지 몰라도 미국 내 교민사회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어교육에 따로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뒤에는 운동은 뭘 시키지? 악기는? 한국어는 당연히 기본이고 제2외국어는 뭐가 좋을까? 그래도 역시 중국어만한 게 없겠지? 아이를 “위해” 엄마가 “대신” 해줘야 한다고 믿는 선택과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소위 “엄친아/엄친딸”을 자녀로 둔 엄친의 어깨엔 나날이 힘이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엄마들의 시기와 질투, 조바심은 고스란히 자녀들이 감당할 몫이 된다.
2년 전, 국내외 언론을 떠들썩하게 달궜던 “하버드, 스탠퍼드 동시 입학 천재소녀” 스캔들은 한 철부지 소녀의 황당한 거짓말이 부른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엄친아, 엄친딸 만들기에 혈안이 된 우리사회의 ‘명문대 집착증’에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었다. 애초부터 명문대는 모두가 가야하는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수많은 부모들의 허영심과 대리만족의 욕구가 자녀들에게 명문대 강박관념, 그리고 그에 따르는 수치심, 패배감, 좌절감을 심어주고 있다.
천재소녀의 거짓 성공담에 많은 또래 학생들이 분노하면서도 공감하였던 것은 아무리 거짓말이 나쁘고 뒷감당이 두렵다 한들 “그래도 엄마가 더 무섭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는 학업 스트레스가 어느정도인지, 어린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학구열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 한국, 그러나 ‘청소년 행복지수 OECD 꼴찌,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청소년 자살원인 1위 성적비관’ 이라는 부끄럽고 가슴 아픈 통계들로 얼룩진 나라. 나아가 최근에는 청년 실업률 악화 속도도OECD 최고를 달리며 고학력 실업자 60만명의 미스매치 사회가 되어버렸는데도 여전히 반성과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그 60만명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한 더욱 치열하고 숨 막히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학벌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세계는 점점 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명문대 졸업장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6년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향후 5년 내로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지고 전 세계 7세 어린이의 65%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만큼 아이의 성적과 학벌로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미 대학에도 입시철이 다가왔다. 최고의 대학, 최상의 교육을 향한 부모의 욕심을 무조건 나쁘다할 수 없지만 그것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지표로 인식되거나 무엇보다 아 와 부모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할 자녀들에게 우리 수치심 대신 자존감을, 패배감 대신 용기를, 좌절감 대신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물려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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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리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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