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을수록 고상하게 싱싱하게 늙을수록 고상하게 싱싱하게](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7/11/09/201711091758545a1.jpg)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실비치로 이사 가셨다면서요? 그래 그곳 생활이 어떻습니까?” - 이런 인사를 종종 받는다.
이사 온지 벌써 5년이 넘는데도 그렇게 묻는 한인들이 오히려 더 늘어간다. 19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민 와서 고생도 직사하게 했지만 그래도 한간두옥이라도 장만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은퇴마을이 바로 실비치이다. LA 코리아타운에서 40분 운전거리에 있다.
“뭐 사람 사는 데 다 그렇지요.....그래도 죽기 전 마지막 정착지로는 이만한 데가 드물어요. 크게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요, 공기도 매우 신선하고, 게다가 안전하고 조용하지요, 노인편의시설도 좋습니다. 실 비치(Seal Beach) 곧 ‘해변 물개’처럼 신나게 살고 있어요.”
누구나 집안자랑에 열을 올리듯 자기 사는 동네를 자랑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없는 것을 지어내서 허풍을 떠는 것만은 아니다. 우선 9,000여 주민 가운데 우리 코리안이 1,500명 정도 된다니까 백인들 다음으로 인구규모가 큰 셈이다. 한글간판과 2424 번호를 매달고 다니는 이삿짐 트럭들이 자주 눈에 띈다.
게다가 우리 코리안은 미국 전역에서 몰려들고 있어서 시카고나 뉴욕 같은 추운 동네 출신들도 쉽게 만날 수 있고 휴스턴 댈러스 같은 더운 동네에서 살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통성명만 하고 나면 바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삽시간에 이민생활 체험 발표대회에 참석한 느낌이 든다. 그런 이민전선 백전노장들의 투쟁사를 듣자면 신이 나고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린다.
그러나 늙어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지난주 합창연습에 나와서, “목소리에도 주름이 잡혔는지 음성이 도무지 청아하게 나오지 않는다”며 깔깔 웃던 할머니가 급작스럽게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남의 일로 들리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칼이 내 목을 항상 겨누고 있는 느낌에 잠이 안 온다는 노인들도 있다. 휠체어를 타는 이들 가운데는 ‘이러고도 꼭 살아야 되느냐’며 비관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늙고 낡은 세대 인구가 30%를 넘게 되어 생산력이 크게 떨어지고, 젊은 세대들은 노인세대 연금 대느라고 허리가 휘청거릴 거라고도 한다.
이런 방송뉴스에 은퇴마을 사람들은 버럭 역정을 낸다. “그래, 늙은이들은 결국 쓰레기란 말이지? 어디 제 놈들은 늙지 않나 두고 보자.”
얼마 전 어느 식당에서 제법 맛있게 끓인 시래기 된장국을 맛보았다. 오래간만에 어머니의 손길도 느꼈다. 무 배추 다 뽑아 김장을 담그고 남은 ‘쓰레기 잎’들을 말려서 끓였단다. 결국 쓰레기도 잘 요리하면 시래기 국처럼 입맛을 돋우는 좋은 음식이 된다.
원래 ‘늙는다’와 ‘낡는다’는 말은 형제지간이다. ‘남는다’와 ‘넘는다’가 자매지간인 것과 같다. 비록 늙어는 가더라도 결코 낡아지지 않는다면 ‘쓰레기’ 같은 노인이 변하여 ‘시래기 국 같은 환영받는 존재가 될법하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도 합창단, 라인댄스반, 그림반, 문예반, 기악반, 서예반, 탁구반, 골프클럽, 심지어 잡담클럽까지 맹렬히 뛰어다니는 은퇴마을 용사들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낸다. 숨 끊어지는 날까지 새로운 것을 열심히 배우고, 작품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은 늙을수록 고상하게 싱싱해진다.
<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