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몇 주 앞둔 지난10월 한국에서 2주간 지내면서, 한국 엄마들이 참 수고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언제 부터인가 학부형이라는 명칭이 학부모로 바뀌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엄마의 권한이 커졌지만, 이에 따른 책임 또한 무거워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고, 자녀의 성공이 곧 엄마의 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한국사회에서 ‘학생의 엄마’라는 위치는 무조건의 봉사와 헌신을 요구하는 자리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사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자신보다는 자녀를 위한 인생으로 삶의 목표가 재빨리 바뀐다. 자녀가 태어나서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또는 유학까지의 긴 교육과정 동안 심신을 바쳐 뒷바라지 하고, 재정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녀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집념으로 살아가는 것이 많은 한국 엄마들의 인생목표인 셈이다.
과거에 흔히 듣던 ‘치맛바람’은 이와 같은 엄마들의 열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되면서 생긴 한 시대의 산물이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엄마들이 자녀교육은 물론 학교운영에 도움을 준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자기 자녀의 특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되는 예가 많아지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부조리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이 ‘치맛바람’의 대를 이은 현상이 요새 유행하는 ‘엄마의 정보 위력’이다. 대학입학을 둘러싼 극심한 경쟁에서, 내 자녀의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이 정보에 따라 빨리 동작을 취하는 것이 엄마의 의무가 되었다.
엄마들이 ‘치맛바람’이나 ‘정보수집가’와 같은, 인정도 칭찬도 못 받는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은 내 아이들에게 ‘경제적 안정과, 대접받는 위치’ 요샛말로 ‘갑’의 지위를 평생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의식 때문이다. 사실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들의 열망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치맛바람’이나 ‘엄마의 정보력’ 같은 현상을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삼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같은 논리로, 현재처럼 일류대학 출신들이 소위 ‘갑’의 자리를 독점하고, 대물림을 통해서 그 특혜를 자손에게 확보해 주는 관행이 계속되는 세상에서는,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정보원 역할’ 현상이 저절로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고졸과 대졸의 수입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학입시에 따르는 극심한 경쟁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학생들과 부모들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어떤 먼 나라들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수백년 묵은 학벌위주와 부의 대물림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단시일에 고쳐지기는 어렵겠지만, 현재보다는 공정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용기 있는 인물이나 그룹이 나서서 개혁의 시동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이들에게 합리적이고 공정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믿음과,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장래에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런 사회가 되면, 엄마들도 비로소 ‘치맛바람’이나 ‘정보원’이라는 역할에서 해방될 것이다. 엄마들은 정말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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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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