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12
▶ ■ 하원 윤리위원회 1977년 10월 청문회
청문회 당시 의회에 제출된 김동조 대사의 사진(위)과 김동조 대사의 미 의회 증언을 요청하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기사.
-김동조와 박동선, 김한조
1977년 10월, 연방 하원 윤리위원회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청문회를 열었다. 앞서 6월에 김형욱이 처음으로 프레이저 한미관계 청문회에 나와 한국 정부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코리아 게이트 의혹에 대한 뇌관을 열어 제치려는 야심만만한 청문회였다.
하원 캐넌 빌딩 345호에서 열린 청문회는 그동안 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과 세간에 흘러 다니던 풍문, 미국 내에서 수집한 증거와 정보를 바탕으로 미 의원들의 불법행위를 파헤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초점은 세 가지였다. 박동선(朴東宣)이 쌀 커미션을 미 의원들에 전달했다는 의혹과 김동조(金東祚) 주미 한국대사가 미 의원들에 돈을 뿌렸다는 의혹, 워싱턴의 기업인인 김한조(金漢祚)가 한국에서 받은 돈 60만 불을 의원들에 뿌린 혐의가 식탁 위의 뜨거운 감자였다.
넓은 청문회장에는 방청객은 물론 미국과 일본의 주요 언론사 기자들, 10명가량의 한국 특파원들까지 취재진으로 붐볐다. 이번 청문회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란 흥분과 기대감이 방청석에 팽배해 있었다.
-“조사 협조는 동맹국의 의무”
플린트 위원장의 모두 발언으로 청문회는 시작됐다.
“이 청문회는 코리아 게이트의 제2단계 조사과정이다. 그간 200명의 증인을 신문했고 그 중 160명은 강제 소환해 조사했으며 증거서류 소환도 190건이나 된다.”
막대한 의회의 힘을 바탕으로 제반 법적 조치를 취해 증거를 수집하고 증언을 청취했으며 그 내용을 공개 청문회에서 공표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청문회 전까지 미 당국의 협조를 받아 치밀한 조사를 진행했음도 내비쳤다.
“그간 국무부와 법무성의 협조로 이 단계까지 왔다. 정보 당국도 협조해줬다. 비밀 준수 요청을 받았는데 거의 완벽하게 지켰다.”
의회의 조사에 행정부는 물론 방대하고 정밀한 미 정보기관의 도움이 있었다는 발언이었다.
플린트는 역시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한국 정부의 반발을 염두에 둔 방어막도 슬그머니 쳤다.
“한국 정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모든 의혹과 사실에 대한 파악이 이번 청문회의 초점이다.”
레온 자워스키 특별검찰관도 서두에서 한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발언을 꺼냈다.
“한국은 주권국가다. 다른 나라에서 자기 국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활동내용에 미 법에 저촉되는 것이 있다. 그렇기에 한국 정부는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그것은 동맹국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13명의 증인들
청문회에는 민주 6명, 공화 6명, 윤리위 소속 12명의 의원 전원이 참석했다.
그동안 제기된 숱한 의혹들을 풀어줄 증인들도 불려나왔다. 모두 13명이었다. 미국인 증인은 E. 델라 가자(텍사스)와 존 마이어스(인디애나) 하원의원의 부인, 래리 윈 의원의 비서인 낸 엘더, 그리고 박동선의 쌀 커미션과 관련된 미국미곡생산자협회의 조셉 아리오또 회장, 로버트 프리랜드 부회장, 쌀 수출회사의 중역인 윌리엄 오스타, 알래스카 공항의 세관원인 데니스 헤이즐턴이었다.
한국인 증인으로는 김형욱과 이재현 전 주미대사관 공보관장, 김동조 대사의 비서였던 이근팔, 박동선의 고용인인 류재신과 이봉양, 그리고 주미대사관의 중정요원이었던 김상근이 출석했다.
이 무렵, 나는 윤리위 특별조사위 멤버로 공식 위촉됐다. 물론 미 당국의 엄격한 신상조사를 거친 뒤였다.
-“박동선 대사를 아느냐?”
증인으로 나온 이재현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1970년부터 주미 공보관장으로 있다가 유신헌법에 동의하지 못해 1973년 미국에 망명을 결행한 인물이었다. 김동조 대사 휘하에 있었던 그의 증언은 주목을 받았다.
“하루는 대사실에 들어가니 김동조 대사가 1백 달러짜리를 넣은 흰 봉투 ‘Two Dozen’ 정도를 서류가방에 넣고 있었다. 내가 무슨 돈이냐고 물으니 ‘의회로 갈 거’라고 대답했다.”
주미 한국대사가 미 의회를 대상으로 현금 로비를 했다는 증언을 한 것이다. 그것은 청문회의 의원들이 고대하던 답변이기도 했다. 그는 박동선과 한국 정부의 수뇌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밝혀줄 중요한 사실도 끄집어냈다.
“루이지애나 주에 있는 어떤 기자의 전화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박동선 대사’의 경력을 알고 싶어 했다. 내가 그런 대사는 없다고 대답하니 재차 묻고는 대사라 우겼다. 다시 부인했더니 전화를 끊었다.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한두 달 후 대사실에 들렀더니 김동조 대사가 읽고 있던 편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건네줘 읽게 됐다. ‘싸우지 말고 박동선과 잘 협조하라’는 내용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서명한 서신이었다.”
-“조선호텔 방에서 돈 봉투 건네”
김동조 대사의 의회 로비설을 뒷받침해주는 증언들은 쏟아져 나왔다. 1975년 8월, 남편들을 따라서 한국을 방문했던 델라 가자(E. De La Garza) 의원과 존 마이어스(John Myers) 의원의 부인들이 증언대에 섰다. 당시 방한에는 10명의 의원들이 부인들을 동반했다. ‘한국의 마타하리’로 불린 수지 박 톰슨도 이때 그들과 동행했다. 이들은 서울의 조선호텔에 묵고 있었다.
가자 의원 부인은 김 대사 부인으로부터 현금 봉투를 받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무대 쇼를 보고 호텔에 밤 11시30분쯤 돌아오니 김동조 대사 부인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검은 백에서 봉투를 꺼내 넘겨주었다. 당신 남편 선거를 위한 선물이라 한 뒤 방을 나갔다. 봉투를 열어보니 돈이 들어있기에 깜짝 놀라 돌려주려고 나가보니 벌써 김 대사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김 대사에 이야기를 하고 그 돈을 못 받겠다며 다른 자선단체에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
가자 의원의 부인은 얼마 뒤 어떤 한국인으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았다. “2천 달러 잘 받았습니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남편이 전장에서 인연을 맺었던 인물로 평택에서 직업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자 부인은 그 편지를 통해 한국 측에서 자신의 부탁대로 돈을 기부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미 의원들의 즐거운 한국 여행
마이어스 의원의 부인도 김 대사 부인으로부터 현금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밤에 호텔로 돌아오니 어떤 여자가 방으로 찾아와 봉투를 줬다. 거절했는데도 테이블에 놓고 나갔다.”
청문회의 의원들이 의문점을 들이댔다.
“그 여자가 김 대사 부인인 걸 어떻게 알았나?” “가자 부인이 검정 백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짐작했다.”
두 부인은 돈 봉투가 전해진 당시의 한국 방문이 세 번째라고 증언했다. 물론 하원의원인 남편들과 함께 한 방한이었다. 그것은 미 의원들과 부인들의 한국 방문이 ‘즐거운 여행’ 임을 암시한 것이었다.
김동조 대사의 의회 로비설의 증언자는 또 있었다. 하원 과학기술위에 있다 외교위로 옮긴 캔사스 출신, 래리 윈 의원의 비서 낸 엘더(Nan Elder)였다.
-미 의원 찾아온 한국대사관 손님
“72년 가을에 한국대사관에서 온 방문객이 윈 의원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윈 의원도 다른 곳으로 가기에 의원 방에 가보니 책상 서랍이 열려 있는데 흰 봉투가 보였다.
봉투가 열려 있어 보니 생전에 처음 보는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윈 의원한테 이야기를 하니 돌려주라고 해 나가보니 그 손님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엘더 비서가 한국대사관으로 전화를 거니 그 손님의 다음 행선지를 알려주었다. 다른 의원실로 가는 스케줄이었다. 그 돈 봉투는 연락을 받은 방문객이 다시 사무실로 와서 돌려주었다 한다.
조사위에서는 엘더의 증언을 듣고 14개의 사진을 펴놓고 윈 의원 사무실에 다녀간 ‘한국 대사관 손님’에 대한 확인 작업을 벌였다. 엘더는 그 중에서 한 장의 사진을 골랐다. 김동조 대사였다.
엘더는 당시 한국 대사관 손님이 두고 간 봉투의 현금 두께가 1인치 가량이라고 증언했다. 조사관들은 100달러짜리로 1인치의 두께를 1만 달러로 추산했다.
3명의 여성 증인들은 김동조 대사와 부인이 직접 미 의원들에 돈을 줬다는 증언을 했다. 그 곤혹스런 직설(直說)의 토로는 이제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 박동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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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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