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자 중 하나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은 첼로 협주곡 중에서도 대단히 어려운 곡에 속한다. 첼로 협주곡중 이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고 철학적이며 선언적인 곡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곡의 가진 힘은 강렬하다.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구 소련의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 예술적 지향과 정치적 요구 사이에서 고뇌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곡을 연주해 본 자들은 안다. 그의 곡 안에 얼마나 눈물어린, 숭고한 인간성에 대한 갈망과 인간애가 숨어 있는지를. 그리고 억압적 체제와 파시즘에 대한 어떠한 조소와 경멸이 담겨있는지를. 스탈린의 철권 통치하에서 이러한 작품을 써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지난주에는 가까운 친구이자 매우 훌륭한 연주자들인 블라디미르와 앨리슨과 함께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앨리슨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블라디미르는 템플대학교에서 가르치며 활발히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앨리슨은 유대인이고 블라디미르는 러시아 출신의 카작스탄인이며 동시에 한국인이다.
우리는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삼중주곡과 20세기 작곡가 피아졸라를 연주했다. 많지 않은 리허설에도 불구하고 호흡은 더할 수 없이 잘 맞았다. 별 달리 말도 필요 없었다. 그저 각자가 자신 안에 있는 정서에 충실하면 되는 일이다. 신비로운 일인 것이다.
고국에서 한창 진행 중인 동계 올림픽으로 인해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요즘이다. 개막식 행사에서 하나하나 집어낸 우리나라의 고유의 유산은 정말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들이었다.
게다가 마침 북한의 선수들과 단일팀으로 함께 참여하며 남북이 문화 행사도 같이 하니, 정치가 건너갈 수 없는 분단의 길을 문화 예술 스포츠가 열어 줄까 기대가 된다. 그러니 제발, 나라와 민족의 자랑인 이 행사를 정치색으로 뒤덮고 정치공방으로 치사하게 끌어 들이는 시도가 있다면 부디 집어 치우길 바란다.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이 2008년 평양에서 아리랑을 연주했을 때 눈물을 흘린 것은 다만 북한 청중들만이 아니었다. 소비에트는 소멸하였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아직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과 같이, 어떠한 정치 선동보다 길이 남을 것은 예술과 올림픽 정신 등에 드러나는 숭고한 인간 정신이라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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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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