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에 위치한 어떤 베트남 언어학교의 봄 축제 행사에 다녀왔다. 그 학교는 우리의 한글학교와 비슷하다. 베트남계 학생들에게 베트남어와 문화를 가르치는데 교회를 빌려서 운영하는 것 같았다. 그 행사에 오래 머물지는 못 했으나 여러가지를 느꼈다.
주최 측의 배려로 그 행사에서 이 지역 베트남 주민협회 회장 바로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 회장으로부터 행사 진행 중 간간이 설명을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부분 베트남어로 진행 되었던 행사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7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그 회장은 1975년에 미국에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이공 함락 후 난민신분으로 미국에 왔던 것이다. 그는 당시 한인들로부터 미국에서 새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가까이 지냈던 한 한인이 사이딩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부지런 했다. 다른 기술자 한 명과 둘이서 이틀에 집 한 채를 끝냈다고 한다. 새벽에 동 트기 전부터 시작해 어두워 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한인의 부인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그 한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본인은 페인팅 일을 하고, 부인은 미용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 한인이 자신에게 롤모델이었다고 한다.
그 날 행사에서 나의 주의를 끌었던 것 중 하나가 성조기와 같이 깃대에 세워져 있던 또 하나의 다른 국기였다. 그런데 그것은 현재의 통일 베트남 국기가 아니라 옛 남베트남 국기였다. 그리고 행사 시작 때 미국 국가도 연주 되었지만 바로 이어서 학생들의 인도 하에 참석 베트남계 주민들 모두 남베트남의 옛날 국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태어난 베트남계 어린 학생들이 통일 베트남의 국기와 국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패망 전 남베트남 국기와 국가를 그들이 지키고 기억해야 할 뿌리 문화의 일부로 배우는 것이었다. 베트남계 주민협회 회장은 현재의 공산주의 체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 날 행사 중 학생들에게 1968년의 “뗏” 휴일 대공세가 비교적 장시간에 걸쳐서 설명되었다. “뗏”은 베트남어로 음력 설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데 1955년부터 오랫동안 끌어 오던 베트남 전쟁이 이 대공세로 말미암아 큰 전환점을 맞았다. 설날을 맞아 이틀간 휴전하기로 한 약속을 월맹군과 베트콩이 어기고 남베트남 전역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 후 여러 달에 걸쳐 맹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결국 월맹군과 베트콩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그 때까지 전쟁이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미국인들은 종전이 아직도 멀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내 월남전 반대 여론이 급물살을 탔다.
그 후 미국은 월남전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고 결국 1975년에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그런데 이 1968년의 대공세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것으로 기록된 전쟁이 “후에” 전투였었다고 한다. “후에”는 남북 경계선으로부터 약 50키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도시였는데 한 달 정도 지속된 그 전투에서 월맹군과 베트콩에게 수 천명의 남베트남 양민들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주민협회 회장은 그 때 월맹군과 베트콩이 총탄이 아까와 죽창으로 찔러서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배웠던 6.25 전쟁의 참상과도 비슷한데, 이 곳에서 태어난 베트남계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듣고 배우는 것이었다.
그 날 행사장을 떠나면서 우리 한인동포들에게도 자녀들의 뿌리 교육이 중요하다면 과연 어떤 점들을 가르쳐야 하나 하는 물음이 찾아 들었다. 한글 교육과 병행해 우리 동포들이 공감할 수 있는 뿌리 교육 표본 교재가 있다면 거기에는 과연 무엇이 실려야 할까? 또한 남북통일이 된다면 미국에서 자라나는 한인 후세들은 통일된 조국의 1945년 이후의 역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평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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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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