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판이 다가 오고 있다. 2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곧이어 북미 정상이 만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인 북한의 비핵화는 정말 가능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직도 회의적인 반면, 이번에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크다.
비핵화는 크게 3단계 절차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 번 째는 핵물질 제조와 실험 등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것인데 이미 북한은 선제적으로 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조만간 풍계리 핵실험장이 폐쇄될 것으로 보이며 일부에서는 이미 노후화된 시설이므로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 절하지만 그래도 나름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표명한 제스처로 볼 수 있다.
둘째는 핵시설 등에 대한 사찰인데 북한이 모든 리스트를 제공하지 않는 한 완전한 검증은 어렵고, 그 대상과 방법을 두고 이견과 마찰이 있을 것이다. 즉 북한은 자신들이 제출한 리스트에 있는 시설에 대한 사찰만 허용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더 포괄적인 사찰을 원할 것이다. 더구나 플루토늄은 생산 원자로의 열이 위성에 의해 탐지되는 만큼 추적이 가능하지만 우라늄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실내에서 제조가 가능하여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까지 몇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고 이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외부에서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체적으로 찾아나서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 단계는 현재 보유한 핵무기의 폐기이다. 사찰과정에서 일부를 폐기할 수도 있고 사찰이 끝난 후에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까지 가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또한 설사 보유하고 있는 핵을 폐기한다 하더라도 북한은 단기간 내에 다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핵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은 핵물질과 시설만 있으면 몇 주 내로 핵을 다시 만들 수 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한다 해도 3개월에서 6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대미 협상 카드로 쓰는 것도 지난 9월 6차 핵실험 이후 이젠 더 이상 실험이 필요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이 말한 핵무력의 완성이란 핵무기를 몇 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언제든 필요하면 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며 북한이 갖고 있는 핵기술과 인력까지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까지 북한 비핵화의 정석으로 여겨진 CVI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나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PVID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완전한 검증도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도 이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서 빅딜을 한다 해도 북한의 비핵화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불신이 생기고 서로 탓하면서 상황이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결국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필요도 또 쓸 필요도 없는 ‘정상국가’가 될 때나 가능하다. 트럼프는 북한이 대북제재와 압박 때문에 테이블에 나왔다고 주장하고 또 그런 측면이 있긴 하지만 북한이 정상외교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병진라인의 한 축인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이제부터는 다른 한 축인 경제발전에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유럽에서 공부한 김정은은 어쩌면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랄지도 모른다. 부인 이설주를 여사라 칭하고 공식석상에 동행하는 것이나, 남북 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한 것도 북한이 더 이상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표면적으로라도 정상적인 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을 정상국가로 변화시키는 것은 비핵화 3단계를 이루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이다.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경제 원조와 국제적 규범을 어겼을 때의 제재, 북미관계 정상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며 이를 통한 ‘안으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한반도의 새로운 봄이 오기를 기대하는 만큼 비핵화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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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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