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열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개관식에서 독립유공자이자 초대 공관원이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증손인 이상구 씨가 태극기 게양을 하고 있다.
야속하게도 간간이 비가 내렸다. 22일 오전 워싱턴 D.C.에서 열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 개관식.
그래도 하객들의 얼굴에는 일제에 빼앗긴 공사관을 되찾은 기쁨이 늦봄의 화왕(花王) 모란보다 풍성하게 피어났다. 200명 가까운 하객 중에는 특별한 손님도 눈에 띄었다. 고종 황제의 손녀인 이해경 여사였다.
뜻 깊은 행사인 만큼 내빈도 많았다. 김종진 문화재청장, 천준호 공사, 랍 우달과 지미 고메즈 연방 하원의원, 정혜숙 DC 부시장, 마크 램버트 국무부 부차관보, 김영천 한인연합회장, 그리고 로건 서클 주민연합회장….
축사와 환영사는 길었다. 취재기자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새어나오지 않던 객석에서 나직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 이해경 여사 말씀이 왜 없지?”
아흔 노구를 이끌고 뉴욕에서 내려온 황녀에게는 끝내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해경 옹주는 고종 황제의 아들로 순종 다음의 왕위 서열인 의친왕(義親王)의 다섯 번째 딸이다. 의친왕비가 자신의 호적에 그를 유일하게 올렸기 때문에 ‘조선 황실의 유일한 공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여사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1950년대에 미국 유학을 와 컬럼비아 대 동아시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왔다. 그는 황실 복원을 추진하려는 일부 종친들에 “시대착오적 미몽”이라며 꾸짖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현대적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강외교를 위해 귀한 내탕금을 내어 매입한 건물이었다. 113년 만에 태극기가 다시 걸리는 그 역사적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는 하루 전 뉴욕에서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출발했다.
이 여사의 감회는 남달랐다. 비가 내리자 그는 “고종 황제께서 비탄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여사는 공사관을 되찾는데 앞장선 미주 한인들과 모국 정부에 감사의 뜻이라도 짧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간곡한 요청을 주최 측인 문화재청에서는 거절했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한인들은 “주최 측의 역사인식의 부재와 결례가 지나쳤다”고 혀를 찼다. 그나마 테이프 커팅 순서에서는 이 여사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공사관 내부 탐방을 끝내고 망국의 마지막 황녀는 뉴욕으로 발길을 돌렸다. 빗줄기는 더 세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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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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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 치적에 눈이 어두워 고종 황제께서 직접 마련한 공관을 더 비싼 돈에 빼았는것도 모자라 황제의 직계손녀 해경공주에 대한 예우도 지키지 않는 대한민국 문화재청 떨거지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언제까지 묵과해야 되는가? 도대체 행정부의 적패를 감시하는 그 많은 국회의원들은 뭐하고 있는가? 이런 무례하고 역사의 근본도 무시하는 작태들을 철저히 감사해야되지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