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리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1981년 2월 1일, 백악관에서는 레이건 대통령 취임 10일 만에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상대는 아직 정식으로 취임식도 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전두환 대통령. 전통적으로 임기 초기엔 유럽국 정상들과 먼저 만남을 갖는 미국으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더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저항이 있던 시기임을 감안할 때 미국 내에서도 전 대통령을 첫 국빈으로 맞는 레이건 대통령의 선택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양국 간 안보협력 강화, 상호신뢰 회복, 대북협상에 있어 대한민국의 완전한 참여 등의 내용을 담아 미국이 전두환 행정부를 인정하고 전적으로 지지할 것을 공식화하였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국내적으로 불안한 정치적 기반 탓에 미국으로부터의 정권 정통성 승인과 지지가 절박했던 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며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큰 선물을 안고 귀국한 전 대통령은 레이건 행정부와의 구두 합의대로 박정희 정권부터 암암리에 진행해오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한국의 핵개발 움직임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1,000여명의 핵개발 인력은 소리 없이 흩어지고, 완성 직전까지 갔다고 알려진 결과물과 관련기관들은 공중 분해되었다. 한미 간 공동선언문으로만 봐선 전 대통령이 얻어온 것이 훨씬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핵개발 포기를 얻어낸 미국의 승리로 기억될 회담이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다소 싱겁게 막을 내렸다. 요란한 예고편에 비해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만남으로 폄훼되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공공의 적, 악의 축으로 지탄받던 북한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던 두려움을 한층 완화시키고 국제무대로 한걸음 끌어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사상교육의 핵심인 민족의 적 미국과의 향후 친화적 행보를 국내적으로 정당화해야 할 부담이 클 김 위원장에게 이번 회담은 충분한 명분을 주었다. 회담 내용대로 후속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을 지속적으로 국제사회로 끌어낼 수 있다면 북한의 변화는 더디더라도 희망적이다.
실제로 북한 관영언론들은 북미회담 소식을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도착하기도 전인 13일 새벽,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하며 4개항의 공동성명 내용과 30여장의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1981년 당시 전 대통령이나 지금의 김 위원장과 같이 정치적 기반강화가 절실한 수장에게 국제적 인정과 국내적 체면은 정권유지에 필수조건이자 최대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북한과 81년 당시의 한국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전두환 회담을 염두에 두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북미회담이 북한 대내 선전용으로 악용될 수 있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김 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둔함보다는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싶다.
그가 쏟아질 비난을 예측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리더, 큰 형님으로서 궁지에 몰린 북한에 먼저 아량과 유연함을 보인 전략은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난 20여 년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수많은 합의들이 선언문에 담겼지만 머지않아 곧 폐기될 종이 한 장의 운명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처럼 장황한 공약은 없지만 북미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 이번 합의문은 평이하지만 의미 있는 양국 신뢰구축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CVID를 문서화 하지 못해 ‘실패한 회담’, ‘나쁜 합의’라는 비난을 떠안았지만 6.12 회담의 핵심은 부실해 보이는 두 장의 공동 선언문이 아니라 이후 전개될 판을 깔기 위해 김정은 달래기에 나선 트럼프식 전략에 있지 않을까?
회담 후 많은 것을 챙긴 김 위원장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더 밝고 당당해 보인 것은 단순히 그의 연기력 탓일까? 북미 간 게임은 현재진행형이고 결과가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지 아직 기대를 놓기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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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리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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