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지나가고, 짧은 해를 향해 열심히 새순을 밀어 내던 나무에도 꽃이 피고 졌다. 마당 한 구석에 이름도 모르는 하얀 풀 꽃 조차 소박한 빛을 품고 빛나는데 마음이 바쁜 사람은 여전히 세월의 짧음만을 탓하고 있었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결처럼 덧없이 사라져 가는 시간 앞에서 조급해짐을 느낀다.
아내의 외출로 주말 오후를 혼자 지내게 되었다. 적당히 빛바랜 의자에 앉아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서도 삐그덕 거리는 상념을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창 너머로 처마 밑에 바쁘게 드나드는 새가 보였다. 그제서야 처마 밑에 새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있다며 노심초사 하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고 현관 앞을 어지럽혀 놓으니 아내에게는 골칫거리가 생긴 일임에 분명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멀리서 찾아 온 손님처럼 느껴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떠난 둥지 안에서는 내 기척을 듣고 놀란 어린 새 소리가 들렸다.
나른한 오후는 참 더디게 지나갔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꺼내 든 ‘정민’ 선생의 책에서 유독 ‘석복수행(惜福修行)’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띄었다. 누리고 있는 복(福)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껴서 남겨두라는 뜻이라는데, 복(福) 조차 아껴서 남겨두는 경지에 이르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옛 어른들이 귀한 자식에게 막 이름으로 아명을 지어 불러 준 것도 혹시라도 지나친 복이 부를 화를 미리 경계하기 위한 석복의 한 형태였던 것 같다. 세상은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해가고 있고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하는 TV 속 앵커조차 예상치 못한 세상 소식을 전하느라 늘 숨 가쁘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눈앞에서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며, 세상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세상살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연 각자가 꿈꾸는 세상에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버거운 현실을 견뎌낼 수 있도록 현실과 이상 사이를 연결해 주는 비밀스러운 통로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부족했으나 부족함을 모르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풍요로워서 오히려 더 궁핍함을 느끼는 요즘 더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 방학 때 마다 도시에 살던 유약한 소년의 놀이터가 되어 주던 외가가 있던 산골 마을은 이제 마음으로 찾아 가는 고향이 되었다. 가난한 농부였던 외할아버지는 풍족하지 않은 살림살이를 늘 아쉬워 하셨지만, 산나물로 차려진 그때의 소박한 밥상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성찬이었다.
최근에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을 새로 알게 되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는 뜻으로 20여년 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처음 등장한 말 이라는데, 뒤늦게 한국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하루키’처럼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마음껏 누리기 어려운 행복을 일상에서 찾아 가는 여름이 되길 바란다. 행복은 파란 하늘을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이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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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커네티컷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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