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민 변호사 [LimNexus LLP 파트너]
최근 마이크 폼페오 연방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쇄 회동에 힘입어 남북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조심스럽게 낙관론과 비관론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최근 방북 때는 ‘재벌’로 불리는 다수의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동행해 북한과의 교역 증대가 주요 현안으로 논의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았다. 특히 개성공단 가동과 남한 관광객의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론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민간 상업 분야를 통틀어 남북한 교류 확대를 원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여전히 UN 제재 하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은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미국은 미 의회와 백악관의 재가를 얻어 UN과는 별개로 일방적인 북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UN과 미국의 대북 제재 조치는 어떠한 북한 은행들과의 거래를 금지하고 북한산 섬유, 식품, 농산물과 귀금속 및 광물 등의 수입을 가로 막고 있다. 또 지난해 9월 발효된 행정명령 13810호에 의거해 연방 재무부는 누구라도 북한과 건설, 에너지, 금융, 어업, IT, 제조, 의약, 섬유 그리고 교통 분야와 관련해 수출 또는 수입 거래를 하는 경우 그 대상을 특별지정 제재대상(SDN)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올해 들어 한반도에서 들려 오고 있는 여러 낙관적인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의 정책은 북한에 대해 최대 한도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연방 재무부가 한국의 시중은행들과 직접 접촉해 대북 제재 준수를 당부하며 미국의 치외법권적인 노력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9월 발효된 UN 안보리 결의 2375호는 공공 사업을 제외하고 북한이나 북한인과 합작하거나 협력하는 형태를 금지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공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북한과의 경제 협력 금지를 명문화했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를 하려고 한다면 완벽한 외국자본 기업(WoFE) 또는 법적 실체가 없는 대상과 거래를 해야 하는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한국 기업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요인은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앞장서 미국인이 아니어도 북한과 위에 언급한 여러 사업 분야에서 ‘중대하게’(significant) 협력하거나 수출입 활동을 하는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대하게’라는 표현은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규모와 빈도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OFAC가 자유 재량권을 가졌고, 미국 정부는 남북간의 관계회복을 지지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입장 변화에 따라 한국의 기업들은 OFAC의 재량권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 기업들 입장에서 대북 투자를 단행키로 한다면 명심할 점은 미국 정부의 대북 제재 조치가 미국민에 제한해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치외법권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의 제재 조치는 미국인과 미국 기업 만을 규제해 국내법으로서 내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상식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세컨더리(secondary) 제재는 국외에 있는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이더라도 제재법의 징벌적인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미국은 가장 공격적인 세컨더리 제재 집행국이다. 통상적으로 치외법권적인 제재는 미국 법에 따라 미국인(어느 곳에 있든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미국 제품과 기술(최소허용보조(de minimis) 또는 재수출품 포함), 미국 달러화 사용(미국 달러화는 미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처리되기 때문)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OFAC는 보다 광범위한 세컨더리 제재를 발효해 일단 한번 명단에 오르면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SDN을 통해 어떤 개인이나 기업이라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많은 국제 은행들과 물류 운송 서비스 회사들 그리고 여타 많은 기업들은 OFAC의 SDN에 지정된 상대방과 거래하길 원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SDN의 하위 개념으로서 SDN과 거래하는 외국인과 외국 기업을 뜻하는 해외제재 포탈자(FSE)로 낙인 찍히기 때문이다.
OFAC의 활동은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진행되는데 일련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지정 과정에서 미국 정보 당국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SDN 명단에 올랐더라도 지정을 해제할 수 있는 행정적인 절차가 있긴 하지만 당사자는 OFAC가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결백을 증명할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제재 조치들은 UN 안보리 결의들과 미 의회의 인준과 행정명령들과 수출입 규제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중 UN 안보리 결의와 미 의회의 인준 등 2가지는 행정명령 폐지와 SDN 지정 해제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사안들이다.
한국이 북한과 경제협력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다고 가정해 볼 때 한국의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의 치외법권적인 능력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북한에 대한 투자와 북한과의 거래를 지원하고 있지만 특히 미국 시장에서 존재감이 빛나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과 은행이라면 청와대도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대북 사업을 이어나갈 한국의 기업이라면 이런 리스크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회사라면 강력한 내부감사프로그램(ICP)을 도입해 제재에 관한 내용을 모니터링하면서 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출을 컨트롤해야 한다. ICP는 반드시 미국 제품과 기술이 SDN이나 UN 제재 대상에 속하는 북한이나 북한인에게 재수출되는 것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제재 명단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운영하는 곳에도 재수출되서는 안되고, 미국 법에 의해 거래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필요하다면 특수한 자격을 얻거나 또는 OFAC로부터 받은 해석된 가이드라인을 갖춰야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는 미국이 이란과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하기 이전 이란에 에어버스 항공기를 수출하기 위해 OFAC의 특수 승인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최소허용보조(de minimis)와 관련해 자사 항공기 부품의 최소 10% 이상에 미국산 제품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중국의 거대 통신기업인 ZTE는 지난해와 올해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 휴대폰을 이란과 북한에 수출하며 최소허용보조 규칙에 의거해 미국의 수출 승인도 받았어야 하는데 이를 받지 않은 점이 드러나 수십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여러가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대북 사업과 관련해서 같은 언어를 쓰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이 장점으로 작동하며 가장 선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최근 수십년간 발전을 이루며 식품 위생 분야에서 국제표준화기구(ISO)와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무역 분야에서 SGS 선적 전 안전검사를 비롯해 현대적인 중재법 등을 도입했지만 한국의 기업들은 북한에 대해 더욱 강화된 국제 비즈니스 기준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추가적인 비즈니스 기준 강화의 필요성을 보여줄 수 있는 현실적인 예로서 북한의 형법이 규정한 죄 가운데는 사회주의식 경제에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많은데 여기에는 뇌물죄 성립을 설명할 법이 빈약하기 때문에 북한에서 투자 기회를 찾으려는 해외 기업들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세계관세기구(WCO)의 종합관세표(HTS)에 따른 무역에서 품목 분류 코드를 사용하지 않아 자유로운 수출입과 관세 부과에 한계가 있다.
만약 한반도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미북 관계가 결실을 맺게 된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대북 투자와 관련, 선도자(first movers)의 위치에 서서 경영학 개념으로서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가지고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 기업이 얻는 혜택인 선점자의 우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제 기준을 따르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면 UN의 대북 제재와 미국의 치외법권적 제재 그리고 여러 수출 관련 법들 때문에 그 여정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제임스 민 변호사는…
제임스 민은 세관과 수출 컨트롤, 경제 재재를 포함한 국제무역법을 전문으로 하는 ‘림 넥서스’(LimNexus LLP)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다. 무역법 변호사로서 그는 변호사, 규제당국, 정책입안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북한 관련 비즈니스에 대해 협력한 바 있고 대북 사업에 관해 미국과 유럽의 투자자들과 사업가들을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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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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