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마무리되는 연말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한껏 들뜨고 술렁인다. 우리 민족은 파란 많고 굴곡 많은 역사 속에 곡예사들처럼 살아오면서 한이 쌓여온 민족성 때문인지 술을 즐긴다.
망년회, 신년회 등 각종 모임과 회식이 있는 자리에는 으레 술이 등장한다. 한 두 잔만 하면 좋으련만 기분 좋아 마시고 기분 나빠 마시고 끝장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이 되어 각종 사고를 가져온다. 죽음을 부르는 음주운전이 해마다 증가한다니 애주가들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남편의 각별한 술 취향으로 오랜 세월 마음 졸이며 재미없이 살아왔다. 신혼시절에도 하루 일이 끝나면 목을 축이자며 동료들과 술집으로 향했고, 주거니 받거니 술과 담배를 즐기며 세상살이 푸념하며 그날의 피로를 술로 털어야 살맛이 나고 내일의 힘이 충전되는 모양이었다.
밤 12시 통금 사이렌과 함께 귀가하는 날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이고 일요일에는 지쳐서 종일 잠을 자야만 했다. 그 어려웠던 60년대 집에는 전화도 TV도 컴퓨터도 없었고 만원버스 타고 다니던 시절, 퇴근시간 맞춰 저녁상 차려놓고 이제나 오려나 기다리다 보면 12시, 나는 저녁을 굶은 외기러기 신세였다. 술에 남편을 빼앗긴 나는 온갖 수단방법을 다해서 말렸지만 어떤 금주 결심도 작심삼일이었다. 다소 낭만적인 남편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술로 달래는 아주 잘못된 습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포기했다가 말리기를 반복해가며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고 우리 부부는 싸워가며 늙어왔다.
그토록 끈질기게 나를 약 올리던 술과 담배는 황혼 길로 접어든 나이에 혈육을 따라 이민 온 후에야 이별하였으니 술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된 미국에서의 뒤바뀐 생활환경은 금주와 금연에 일등공신이었다.
긴 세월 마셔버린 알콜과 니코틴은 남편을 곱게 놓아주지 않았다. 건강함을 자신하던 그는 70세를 넘기자 병든 고목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청신경이 마비되어 세상소리 듣지 못하고 치매가 시작되었고 걸음이 불편해진 다리는 쉽게 넘어지고 금이 갔다.
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고 자기 아집대로만 살아온 자업자득으로 노년의 행복을 버린 남편은 지금은 100세 노인의 모습이며 “우리 나이 들면 손잡고 세상곳곳 여행 다니자” 하던 그 사람은 이젠 꿈속에서의 여행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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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포토맥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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