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8/11/21/201811211800205b1.jpg)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매년 원서 제출기간이 되면, 예비대학생들이 고민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전공 선택이다. 전공과목의 숫자는 많은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자기에게 적합한 것인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상담교사들이 자주 해주는 권고가 바로 자신의 열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 열정을 실현할 수 있는 전공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 권고가 합리적인 권고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이 권고는 모든 학생들이 적어도 한가지씩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열정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시계를 보지 말라”는 에디슨의 말에 담겨있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푹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없지는 않지만 소수이다.
열정이 무엇이냐는 질문보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전공 결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나는 아무 분야에도 관심이 없어요” 라는 답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분야가 덜 싫으냐는 질문을 통해서 선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오래 전 졸업반 학생 제이미와 상담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다. 성적은 중간정도이고 성격은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하지만 선수가 될 정도로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래도 대강 어떤 방향으로 전공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좋아하는 분야도 없다고 했다. 또 지금부터 장래 직업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슬그머니 열이 오르면서 내 목소리가 커졌다. “너, ‘make a living’ 이라는 말 알지? 삶을 이어가는 것 과 돈을 번다는 말이 함께 포함된 말이라는 것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제이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젊은이들이 교육을 마친 후 직업을 얻고, 가정을 이루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큰 보람이며 즐거움이라는데 동의할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다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런 인생과정이 저절로 보장된다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대학교육은 100년 인생 준비 중의 하나이고, 전공 선택은 그 준비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결정이다. 물론 열정추구와 안정된 생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능력을 가진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일과 현실생활 사이에서 조금씩 양보,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다소 어정쩡한 권유를 해 주었던 적이 많았다.
제이미와 상담이 있던 며칠 후 젊은 동료인 빌에게 제이미와 상담했던 얘기를 했다. 얘기를 듣고 난 빌이 말했다.
“아니, 미세스 김, 제이미 머릿속에는 그날 오후에 농구시합 구경하고 친구 집에 모여서 신나게 놀 생각뿐인데, 미세스 김은 까마득히 먼 30~40년 후에 먹고사는 문제 얘기를 하셨네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빌과 함께 웃었지만,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은 제이미가 아닌, 바로 상담교사인 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전공 선택에서 열정과 현실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하라는 내 상담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긴 인생에서 모든 일이 계획하고 준비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계획도 준비도 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더 위험하다는 것이 나의 변치 않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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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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