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영 심리학 박사
한 소년이 있었다. 아이는 개와 함께 지냈다. 개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주고 외롭거나 두려울 때 친구가 되어주며 언제 어디서나 아이를 지켜주었다.
어느덧 아이는 성인이 되고 강아지도 늙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심장의 고통을 호소하며 911에 도움을 청하였다. 구급요원이 도착하여 그에게 다가가려는데 개는 주인을 낯선 사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끝까지 막아 결국 주인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방어기제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작은 자극에서부터 심한 심리적 트라우마 혹은 소화되지 않는 감정을 경험했을 때 나름대로 살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기보호 체계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젖을 먹던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위해 저작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애교를 부리거나 떼를 쓰는 행위들이 모두 삶을 위해 획득해가는 적응기제이다.
배변 통제를 잘하던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다시 오줌을 싸며 유아기로 퇴행하여 엄마의 관심을 받으려고 한다. 엄마의 관심이 동생에게로 쏠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에 대처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기제이다.
갑자기 무서운 것을 보면 아이들은 눈을 감아버리거나 엄마 등 뒤에 숨어버린다. 회피는 어려운 상황을 피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된다.
심한 폭력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은 살기 위해 망각이나 해리 혹은 분열 속에서 환청이나 환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병리 뒤로 숨어버린 경우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미성숙한 감정이라는 자기 평가시스템에 걸려 왜곡되거나 투사되어 다른 사람이 나를 질투한다는 마음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성인의 길목에서 책임이 두려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성장을 방해하는 질병에 집착하여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어려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기제가 어느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된다. 아이가 일찍 개와 이별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으면 아마도 생명을 구했을 것이다. 두려움에 눈을 감아버리면 고양이는 호랑이로 부풀려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 눈을 뜨고 관찰하여 실체를 확인할 때 고양이임을 알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은 내가 최고였던 세상에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이때 아이가 느끼는 공포는 상실감과 시기심이다.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시기심 대신 동생과 엄마를 공유할 수 있는 형 역할의 페르소나를 발전시킨다면 엄마로부터 신뢰를 얻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상실이 두려워 엄마의 젖가슴에 집착하는 퇴행은 결국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성장은 책임을 수반한다. 성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이 두려워 어린아이로 남고 싶은 사람은 피터 팬이 되어 동화나 엄마의 젖가슴에 대한 판타지에 머물기를 소망한다.
문제를 회피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기억을 조작하고, 남 탓하고, 남에게 의존하였던 어린 시절 어리광에서 벗어나 문제를 직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불리한 기억이라도 왜곡하지 않으며 문제를 끌어안고 책임지는 삶이야말로 성인으로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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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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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가 민주당이 책임져야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럴까 참 안타까운 때가 있곤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