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한기 한국서예가협회 초대작가 겸 한국한시협회 회원
왜정 때 한국인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해 폭압에 시달렸다.
어려서 보니 왜경이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야학에서 (일본말로) 천황폐하의 훈시를 배우고 이해했느냐”고 다그친다. 그러다 대답이 없으면 농민의 지게 작대기를 빼앗아 어깨를 후려친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일본에 적개심이 남아 있을 정도다.
6·25동란이 터지고 천안에서 미군·국군과 인민군의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아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나무에 매달린 시체를 봤다. 파리떼가 달라붙어 악취가 났다. 사람들이 ‘인민세상이라고 머슴이 (악독한) 주인을 타살했다’고 했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가 1·4후퇴 당시에는 천안에서 공주 쪽으로 피난을 가다가 진눈깨비 속에 두 살과 네 살에 불과한 어린 두 동생이 숨졌으나 땅이 꽁꽁 얼어 묻지도 못했다.
얼마후 고향으로 돌아오니 초가집은 불타 없어졌다. 학교에 다닐 때는 월사금을 못 내 선생님이 ‘돈 갖고 오라’고 돌려보내기도 하고 손바닥도 때렸다.
5·16 후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변화하고 산업화도 시작됐다. 직장에서 화공약품으로 레이온을 생산하는 일을 하다가 이황화탄소중독이라는 직업병 판정을 받았다.
우울증을 안 의사의 권유로 붓을 잡고 사진을 찍다 보니 주역의 건곤감리(乾坤坎離) 태극사상에서 천지인(天地人)을 알게 됐다.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며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울함을 벗어 던지니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정신건강도 나빠지지 않았다.
IMF 시절에는 한국팔기회 사무국장으로 도산기업 재기 운동을 하며 방송국 관계자에게 금 모으기 운동도 제안했는데 기회가 되면 팔기회 활동을 재기하고 싶다.
이제는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살다가 죽음을 잘 맞는 고종명(考終命)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산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대문에 첩(帖)을 붙여 하늘에 복(福)을 빈다. 주역에 나오는 하늘이 갖추고 있는 4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天道)로 우리에게 밝은 지혜를 깨우쳐준다. 인도(人道)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사람이 사람다우면 된다.
조상들은 이런 지혜를 사는 곳에도 구현했다. 서울의 동쪽에는 흥인지문(仁), 서쪽에는 돈의문(義), 남쪽에는 숭례문(禮), 북쪽에는 숙정문(智)이라 했다. 이 모든 중심에 있는 보신각(普信閣)은 인의예지를 갖춰야 신뢰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이 살아가는 철학적 기반이 흔들리고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것이 요즘 세상이다.
팔십을 넘고 보니 세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원형이정과 인의예지신에서 사람다움을 알게 됐다. 오만(傲慢·태도가 거만함)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건져내야 석가·공자·예수 등 성현의 가르침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상급반부터 서예와 한문을 가르쳐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게 했으면 한다.
백성은 제대로 먹고 입고 자며 생업을 누리면 탈이 날 이유가 없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이런 이치를 알고 대덕(大德)을 이루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바로 그런 가르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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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한국서예가협회 초대작가 겸 한국한시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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