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일룡 변호사
최근 며칠 간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서 한국의 동해연구회가 주최한 ‘제25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나는 부분적이나마 참가했다. ‘지명을 통한 다양성 교육’을 부제로 한 이 세미나에는 40여 명이 참가했는데 한국과 미국은 물론 캐나다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참가자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워싱턴 DC를 포함해 미시간과 테네시 주에서 오기도 했다. 참가자 중 상당수는 대학 교수였으나 중고등학교에서 지리 과목을 가르치는 미국인 교사들도 제법 되었다.
처음 이 세미나에 참가 요청을 받았을 때는 망설였다. 한 토론 세션에서 토론 패널로 참가하는 작은 역할이었지만 시간도 제법 뺏기고 학술 토론에 참여할 만큼 이 주제와 관련해 내가 아는 게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널의 발표자들과 주제를 살펴보니 학문적 관점보다는 동해 병기에 관한 정치, 사회적 시각을 다루는 내용 같아 용기를 냈다. 특히 같이 토론자로 참가할 사람 중 하나가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라고 해서 나의 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립학교에서의 동해를 위시한 지명 교육에 관한 논의에 수퍼바이저보다는 교육위원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버지니아 주 의회가 2014년에 제정한 교과서 동해/일본 해 병기 법은 버지니아 주 지역 한인사회의 단결된 정치력 발휘의 결실이었다. 그 전에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경험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도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쾌거를 2014년에 이루어냈던 것이다. 이러한 법 제정 승리는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동해 병기 문제에 있어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을 버지니아 주의 한인사회에서 해냈기 때문이다.
법 제정 5년이 지난 지금 이 법의 효과로 인해 미국 내에서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된 교과서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그 후 미국 내 다른 주에서 비슷한 법이 제정된 경우는 없다. 그만큼 이러한 법 제정이 쉽지 않은 것이다. 동해 병기의 이슈에는 교육적이기보다는 정치적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 요소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판단에 주 의회에서 다루기를 꺼려할 것이다.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이 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선거를 앞두고 한인사회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페어팩스 카운티 출신의 영향력 높은 민주, 공화 양당의 주 의원들과 주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던 민주당의 테리 맥컬리프 전 주지사의 정치적 이해가 한인사회의 요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항상 홈런을 치려고 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 홈런은 아니지만 안타를 치고 나가도 된다. 안타가 여럿 모이면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다. 2014년의 버지니아 주 동해 병기 법은 홈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홈런만 노리지 말자. 대신 좀 더 가능한 안타를 치도록 하자. 법 제정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과 함께 미국 내 주요 학군들을 시작으로 한 커리큘럼 개정 노력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교과서에서의 단순 병기보다 실제로 수업시간에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번 세미나에 참가하면서 동해 병기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도 큰 수확이었다.
한편 동해 병기가 내포하고 있는 현안들이 요즈음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지정학적 사안들과 흡사한 점이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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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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