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5세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이민 왔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교편생활을 했던 아버지는 철두철미하게 잘못된 것과 올바른 것을 구분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아버지가 미국에 오실 때 60세였다. 당시 나는 아버지가 모든 것을 접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미국에 온 다음해 신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많이 놀랐다. 그 나이에 무엇을 또 하시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가졌던 반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목사가 되었고 목회를 25년 정도하고 나니 그렇게 싫어하고 멀리하고 싶었던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왜 그때 아버지를 더 도와드리지 못했을까?
60세였던 아버지 나이에 도착하고 나니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살아 있는 한 무엇인가 끊임없이 해야 하고,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처럼 똑같이 먹고 싶고 가고 싶고 입고 싶고 즐기고 싶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한 것은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90세를 살면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려고 하셨던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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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광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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