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가 있는 스테이트 칼리지는 작은 시골의 대학타운이다. 미국의 웨일즈란 별명이 있는 이곳은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산이 병풍같이 학교를 두른다. 사계절 토끼가 뛰어다니고 청솔모가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은다. 학교 밖 아미쉬 마을에서는 말과 젖소가 뛰논다. 이번 주에는 체육관 앞에서 청솔모를 잡아먹는 매를 보았다. 학교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관찰할 때면 내가 정녕 미국에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생경한 즐거움이다.
자연의 넉넉함을 따라 결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풍경이 있다. 건물 안에서, 길 위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순간순간 마음에 훈풍을 넣어주는 배려가 있다.
얼마 전 건물 사이로 이동할 때, 닫히는 문을 잡으려고 헐레벌떡 뛰었다. 그때, 아슬하게 닫히는 문을 잡고 기다려준 노신사가 있었다. 조심히 가라며 싱긋 웃어주신다. 나도 덩달아 방긋 웃으며, “땡큐” 했다. 아니, 이건 나이를 떠난 친절이다. 학부생들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 매번 고마워서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리게 된다. 배려를 받으니 같은 마음으로 배려해주고 싶다.
도로에서 길을 건널 때도 그렇다. 토종 한국인인 나는 꼭 운전자의 눈치를 보며 멈춰 선다. “차 먼저 가세요” 차가 지나가길 공손히 기다린다. 그런데 아주 많은 경우, 운전자들은 차를 멈추어 선다. 내가 머뭇거리면 운전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어서 건너가라며 수신호를 보낸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고마움에 씨익 웃으며 후다닥 길을 건넌다. 나중에 차를 사게 된다면, 꼬옥 기다려주는 운전자가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길을 가다가 낯선 이에게 칭찬도 받았다. 최근 학교에서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친 한 낯선 학생이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앞머리 잘 잘랐네!” 두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자르는 시늉을 했다. 의외의 한마디에 놀라 씨익 웃으면서 “고마워!” 화답하고, 각자 가던 길을 갔다. 그날은 앞머리 좀 너무 짧게 자른 것 같아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칭찬이 참 고마웠다.
하루를 마감하는 밤에도 의외의 인사가 있다. 밤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올 때, 운전자가 “좋은 밤 보내”라고 정거장마다 학생들에게 인사한다. 나도 하루는 용기를 내어 “너도!”라고 화답했다. 이후로는 먼저 “좋은 주말 보내요!” 혹은 “고마워요!” 말을 전한 후 버스에서 내린다. 다시 볼 기약 없는 운전기사지만, 하루를 마감하며 인사를 주고받는 일상이 정겹다. 말 한마디의 여유와 넉넉함, 그리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다시 만나도 서로 알아차리지 못할 순간의 관계.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다림과 배려의 손짓과 격려의 눈빛, 말 한마디의 응원. 그 순간의 관계를 이루는 찰나의 온도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삶이 모여 그려지는 마음의 풍경이 있었다. 추운 겨울을 예비하듯, 마음에 훈풍을 넣어주는 순간들은 마치 후ㅡ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같이 흩어 사라질지언정, 조그마한 기쁨의 씨앗은 마음에 심기어져 종국에는 노란 민들레꽃 같이, 하루를 향해 방긋 웃는 싹을 틔운다. 순간을 기뻐하는 힘을 준다.
우리학교 시골 마을의 하루는 매 순간 새롭게 작은 기쁨들과 친해지는 시간이며, 마음 한 가득 민들레 밭을 기경하며 봄의 잔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작은 기쁨’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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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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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참 좋은 동네입니다. 미국의 방방곡곡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