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85세의 지인이 넘어져 혼수상태라는 소식이다. 그 어른이 들릴 듯 말 듯 입을 달싹여 계속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연분홍 치마가..,’를 부른다고 한다. ‘알뜰한 그 맹세..,’는 거듭 거듭 부른다고 한다. 혼수상태에서 자꾸만 유행가를 부른다는 소식은 나를 쓰리게 했다.
이 어른은 꽃다운 낭랑 18세에 연분홍 치마와 연두색 저고리를 입고 족두리 쓰고 시집을 갔다. 동네 처녀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집이었다. 헌데 시집살이는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고됐다.
남편의 사랑이 지극해 참아낼 수 있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다. “몸이 너무 쇠약해졌으니 친정에 가서 반년쯤 몸조리 하고 오라”. 지독한 시어머니가 갑자기 인자하고 다정 했다. 그렇게 젖먹이를 떼어놓고 친정으로 간 여자는 반 년 동안 몸을 추스르고 다시 시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대문 안에 들어서자 그녀의 방의 방문을 열고, 웬 여자가 새색시 모양을 하고 나오는 게 아닌가?
여자는 그날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던 남편의 맹세는 흔적도 없었다. 온갖 풍상을 겪은 그녀는 딸과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데려와 키웠다.
여자의 남편이었던 남자는 지금 없다. 그 때까지 여자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이 들어 함께 늙어가는 자식들이 “그까짓 것, 왜 이혼해주지 않았느냐” 했다. “그까짓 것?” 자식들마저 자신을 몰라주는 심정, 원망할 길 없이 보낸 세월, 그 어른의 유행가는 ‘노래’가 아니다. 내내 그랬던 것처럼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목숨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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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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