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재계 서열 2위에서 그룹해체 등 격동의 삶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저서 제목처럼 ‘세계경영 신화’를 썼던 김우중(사진)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한국시간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자신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내몰리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 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왔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만 30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아울러 김 전 회장은 21조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으로 감형됐으며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머물며 동남아에서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프로그램에 주력해오다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에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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