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동네친구들이 하는 놀이에 관심도 많았고 그 어느 것에도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해보고 싶었다. 줄넘기, 고무줄, 땅따먹기, 공기치기, 인형놀이 등 여자아이들과도 많이 어울렸지만 4명의 오빠들과 자란 나는 특히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말타기, 제기차기, 닭싸움 등 남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더 좋아했고 선머슴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온 동네에 개구쟁이로 소문이 났었다.
화약을 장전해 작은 로켓을 만들고 발사대를 세워 공중으로 쏜 다음 그것이 떨어진 곳을 찾아 하루 종일 온 동네를 헤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정도로 내게 소아마비 장애가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 잊고 놀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못하는 것은 장애 때문이라기보다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놀 때 마음대로 잘 따라오지 않는 왼쪽다리를 항상 한손으로 잡아 도와야 했기에 보는 주변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억척’이라고 불렀고 몸도 불편한데 좀 조신하게 있으라며 내 행동을 저지했다.
대학생이 되어 학기의 첫 강의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고르기도 전에 새로 오신 교수님께 적응을 해야 하는 조금 당황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스스로를 한 재활원의 부원장이라고 소개하며 미국유학을 마치고 얼마 전에 돌아왔고, 그 시간이 첫 강의라고 한 그 분은 편안하게 질문을 하고 답을 유도하는 대화법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하고 교수님이 던진 첫 질문이 “장애인을 대하는 일반인에게는 이중적 잣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설명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내 이야기인 것 같은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보니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손을 들자 교수님이 대답을 청하셨다.
나는 내가 자라면서 겪은 경험들을 예로 들며 이야기를 했다. 일반인들은 위축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장애인을 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위로의 말을 쏟아내는 긍정적 입장을 취하지만 명랑하고 밝고 도전적으로 환경과 맞서는 장애인을 보면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나댄다거나 ‘억척’이라는 과한 표현을 담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마 그 이론에서 말하는 이중적 잣대를 의미한다고 답했다.
그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약한 다리를 팔로 도와야 함에도 장애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늘 웃는 얼굴로 다녔는데 그런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며 뒷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절대로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학문적 이론이 뒷받침할 정도니까 내 등 뒤로 느끼던 사람들의 시선이 틀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남의 사정에 대해 그리 관심을 쓰는 것 같지 않은 개인주의 중심인 미국에서 장애인을 보는 일반인의 이중성에 대한 이론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생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장애가 있다고 동정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남보다 의지가 강하거나 특별한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한국에 ‘샘터’라는 잡지가 있다. 벌써 출간 40주년이 되었다는 샘터는 잡지명 바로 위에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라는 그 잡지가 추구하는 주제를 나타내는 글이 적혀있다. 아마 우리는 남보다 뛰어나 이름을 날리는 누군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있어보여도 결국 우리의 행복은 평범함에 있다는 작은 진실을 부인할 수 없다. 바로 장애인들도 사회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의 한사람으로 봐주는 인간관계를 가장 편안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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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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