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에 입문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에 부딪히는 내용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유명한 예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마치 예수교 입문의 조건처럼 인식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주저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이에 도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사실상 실행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자기를 적대하는 사람은 싫어하기 때문에 관계의 골이 깊어지면서 ‘원수’가 생기게 된다. 이 원수는 원래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처음부터 원수는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원수가 생겼다면 나 또한 그 대상에게는 원수인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입장과 처지라는 게 있다. 따라서 각자의 입장과 처지를 주장하다보면 원수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에게 원수가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어떠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목숨 걸지 않게 되며 오히려 상대방의 고뇌에 내가 동참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한 되만큼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한 되만큼만 돌려주면 된다. 되를 말로 돌려주려하지 말고 되로만 돌려주라.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되를 말로 돌려주기 때문에 자꾸 원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훈련만 착실히 해나가도 원치 않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살다보면 점차 성화되어가면서 되로 받은 것조차 되로 돌려주지 않는 지경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곧 ‘용서’이다. 용서라는 벽이 허물어지면 사랑이라는 빛이 어느새 틈바구니 사이로 은밀히 들어선다.
이제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나를 내세우는 시기가 아니라 남에게 내가 어떻게 비쳐보일까, 하느님 보시기에 내가 어떠한가를 묵상해보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 나의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부활의 소망이 주어질 것이다.
사순시기를 맞이하면서 나에게 섭섭하게 했거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다면 묵상해보자.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제공하지는 않았는가를….
원수는 처음부터 없다. 이것을 깨달으라고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
최영권 성프란시스 한인성공회 신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