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에 등장하는 여 주인공 나스따시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라면 누구나 탐 낼만한 미인이었다. 그녀의 붉은 빰 오른 쪽에 돋아난 검은 점 하나에도 흔들리는 남성이 여럿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리의 여자 ’소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혼신을 기우려 찾아 낸 아름다운 여성이다. 소냐는 가난한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거리로 나가 몸을 파는 비천하고 가련한 여자다. 이웃 사람들은 소냐를 억세게 불운한 여성이라고 수군거리고 외면한다. 협잡과 사기에 능한 출세주의자 루진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돈을 미끼로 소냐에게 접근하다 오히려 망신당한다.“ (콘스탄틴 모출스키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중에서)
나스따시야의 그 현란한 아름다움 때문에 불행한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점잖은 신사 미쉬낀 공작, 아버지의 유산 상속으로 하루아침에 거부가 된 청년 로고진 그리고 돈 많은 지주 또스끼가 나스따시야의 미모를 쫓다가 모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은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한 위험한 아름다움이었다.
소냐의 아름다움은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이 외모의 화려함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라면, 소냐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영적, 정신적 아름다움이다.
이런 하찮은 여자가 전당포 노파를 죽인 후 반항의 삶을 살고 있는 오만한 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를 구원으로 이끈다.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설의 극치다.
거리의 여자 소냐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고단하게 살면서 시대의 반항아이며 본능의 자유를 주장했던 라스꼴리니꼬프를 구원으로 이끌었다. 천한 세속의 옷깃 안에 숭고한 사랑을 깊숙이 숨기고, 오만한 살인자에게 겸허하게 침투하는 소냐의 아름다운 사랑은 예수를 닮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 등장하는 주인공 미시낀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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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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