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집콕’ 신세가 된 지 벌써 두달이 넘었다. 두려움과 답답함이 뒤엉켜 갇혀 지내다보니 확진자는 아니라도 ‘확찐자’가 돼서 몸무게가 몇 파운드 늘었다. 얼마 전부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전읽기에 도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손에 들었었다. 그런데 그 방대한 볼륨에다가 등장인물들이 수없이 많아 얼마 못 읽고 중도 포기해버렸다.
그 무렵 지인이 카톡을 통해 한국 TV에서 방영된 인문학 교양강좌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 가운데 한 프로가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였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었으나 강사가 전해주는 4~5,000년 전 수메르 땅에서 신과 인간의 얽힘 속에 벌어지는 애증, 인간의 영생추구 등 해설이 너무도 흥미를 끌었다. 인간과 신이 마주보고 살던 아득한 시원의 세계가 내 영혼의 지평을 한없이 넓혀주는 것 같았다.
나는 TV 인문학강의 프로그램을 계속 뒤져 들어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지나 플라톤의 국가론, 플루타르크 영웅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살라미스 해전, 로마제국의 탄생과 몰락, 어거스틴의 고백록, 중세 이후 르네상스의 개막과 전개 등 계속해서 인문학 강의에 빠져들었다. 또한 다시 한 번 읽어보리라 생각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문학작품 해설도 경청했다. 한마디로 TV 인문학 강의 바다에 푹 빠져버렸다.
요즘 저녁에 동네 길을 산책할 때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걷는다. 이런 프로그램은 전문가 대상도 아니고, 내가 책으로 소화하기엔 10년도 더 걸릴 엄청난 분량이다. 말 그대로 교양 프로그램이라 재미까지 곁들여 이제는 내 일상이 돼버렸다.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폐색된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한없이 넓은 정서적 지평으로 안내한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모르는 이 새로운 일상이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의 탈출이고 오디세이다.
<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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