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뒤로한 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됐다.
영화에서만 보던 화려한 미국에 대한 환상은 현실과 맞닥뜨리며 사정없이 깨어졌다.
이민 와 얼마 안돼 지금은 없어졌지만 하이스(Highs)란 컨비니언 스토어에서 캐쉬어로 일했다.
어느 날 한산한 저녁 시간에 한 남자가 들어와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계산대로 와 나지막하게 돈을 달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다시 물어보자 갑자기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보이며 빨리 돈을 달라고 했다. 총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음처럼 얼어붙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만약 강도가 들어와 돈을 요구하면 계산기에 있는 돈을 다 주라고 무수히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너무 놀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강도는 조급 했는지 계산대를 뛰어넘어 내 옆구리에 총을 대며 쏘지 않을 테니 빨리 계산기를 열라고 했지만 난 눈앞이 깜깜해지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깨어보니 계산기는 열려있고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도 안 되고 엉금엉금 기어서 창고에 있던 매니저에게 갔다. 순간 눈물이 터져 말도 제대로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같은 장소에서 미성년자한테 술을 팔았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가야 한다며 종이에 사인하라는 것을 안 하니 손목에 수갑을 덜컥 채운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 사인을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사인을 안했다.
경찰서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너무 어이가 없어 눈물조차 나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보석금을 내고 그날 나올 수 있었다. 어릴 적 일요일이면 아버지 곁에서 TV 프로그램 중 ‘수사반장’을 보며 수갑 차는 모습만 보아도 무서웠는데 직접 당해보니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한국에 가고 싶어 비행기만 보면 부모님 생각에 많이 울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어느덧 한국에서 산 세월의 두 배인 어언 40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렸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간담이 서늘해지고 쓴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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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센터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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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하셨네 그래도 지금 잘되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앞으로 좋은일만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