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맥주집 생각이 간절하다. 옥터버페스트(Oktoberfest)맥주축제가 아니라 사과밭에 갈 때가 된 것이다.
흰색 소시지를 조금씩 잘라 맛을 보고 커다란 유리잔에 거품이 찰찰 흐르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맛에, 사과 따러 가는 일에 낭만을 더해준다.
거의 매년 가을, 사과밭에 간다. 아이들이 어릴 땐 가까운 곳에 널려있는 사과밭으로 소풍을 갔었고 아이들이 집을 떠난 후부턴, 별 할 일이 없어서 또 사과밭에 가곤 했다. 사과 밭이라고 값이 싸지는 않다.
중간 마진이 없으니 싸야 할 것 같아도 오히려 오고 가는 개스값까지 합한다면, 비싸도 많이 비싸다. 가까운 팜 마켓(Farm Market)에서도 인근 농장에서 온 싱싱한 사과를 파운드에 1달러 49센트면 살 수 있다.
사과밭에 사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는 제스처다. 허파를 부풀려 담아오는 새콤 달콤 맑은 공기로, 수북히 쌓인 삶의 먼지들을 날려 보낸다.
1982년 10월에 소개로 만난 남자랑 사과밭에 갔었다.
2월에 뉴욕 JFK에 내리고 3월인데도 눈이 펑펑 쏟아 지더니, 봄인가 아닌가 하는 사이에 갑자기 한 여름이 되자 에어컨 없는 100년 된 맨하탄 브라운 스톤 친구 집은 푹푹 쪘다.
브로드웨이 인도 도매상에서 산 얇은 원피스를 물에 적셔 입으면서 여름을 지내고 난, 9월에 한 남자를 소개 받아 그 남자랑 데이트 간 곳이 바로 웨체스터의 어느 사과밭이다.
서울에 살면서 배밭, 딸기밭은 갔었지만 사과밭은 처음이다. 사과 하나를 따서 맛 보고, 맛이 있으면 그 나무의 사과를 따서 상자곽에 담아 차 트렁크에 넣는다. 해가 넘어갈 무렵 입구에서 직원이 차 트렁크를 열어 보인다.
데이트 한 남자가 집짓기 장난감 쌓듯 사과알로 쌓아 올린 상자에서 주루룩 쏟아져 내린 사과들로 한 박스는 충분히 더 담을 정도였지만, 사과 밭 직원은 상자곽 수 대로만 돈을 받았다. 그 값이 무척 쌌던 기억이다. 어딜 가나 모든 것이 풍성해 보였던 미국의 풍성한 가을이었다.
사과를 마구마구 담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나서, 사과밭 데이트 노스탤지어를 생활의 변화에 맞추어 갱신해 나갔다. 사과밭 가는 일이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고 그러다가 이제는 맥주 한잔 마시기까지 더해진 것이다.
몇 년 전에 미네와스카(Minewaska) 주립공원의 모홍크(Mohongk) 리조트 호텔 가까이에 있는 젠킨스 농장(Jenkins Lueken Orchards)을 발견했다. 뉴 팔츠에 있는 이 사과밭은 가까이 눈 앞에 둘러진 절벽이 장관이다.
예술적 분위기의 대학 도시인 뉴팔츠의 고적지를 구경하고, 낙엽이 오색으로 출렁이는 미네와스카 호수물을 바라보며 앉았다가, 70년 역사를 지닌 ‘마운틴 브라우하우스( Mountain Brauhaous)’에서 독일식 감자 샐러드 곁들인 흑맥주를 마시면, 맛과 멋이 어우러진다.
맥주집 웹사이트 홈 페이지에< Please remember to wear your mask any time you are not seated, & maintain at least 6-foot spacing from others.> 라고 쓰여있다.
코로나 병에 걸린 중에도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마스크를 벗어버리는 웃지 못할 쇼를 하는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비즈니스가 줄어도 법망도 잘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규칙을 엄수 하는, 독일 이민자의 3대 자손들이 있다.
소셜디스턴스를 지키기 위해 식당 뒷마당 테이블에 오직 두 사람만 앉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린 문제 없다.
우리 부부 두 사람이, 차 트렁크에, 비싸지만 맛있는 사과를 가득히 싣고, 시원한 맥주로 그레이 낭만을 즐기려면, 더 늦기 전에 사과따러 가야겠다.
<
노려/한국일보 웨체스터 전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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