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즈 테일러 전 남편…한인이민 100주년 결의안 주도
한국전 참전용사로 워싱턴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존 워너 전 연방상원의원(공화, 버지니아, 사진)이 25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워너 의원은 이날 저녁 버지니아의 알렉산드리아 소재 자택에서 부인 지니와 딸 버지니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
랠프 노담 버지니아 주지사(민주)는 26일 “버지니아와 미국이 큰 거인을 잃었다”면서 “그는 항상 버지니아를 가장 먼저 우선 순위로 두고 연방 상원에서 초당파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인물”이라고 그를 평했다.
중도 성향으로 양당의 온건파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5선의 워너 연방 상원의원은 1979년부터 2009년 1월까지 30년간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변호사이기도 한 워너 전 의원은 상원의원을 은퇴한 후 2020년 6월까지 호건 로벨스 로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7년생인 워너 전 의원은 17세 때 해군에 자원해 2차 대전에 참전했고, 1949년 공학 전공으로 워싱턴 앤 리 대학을 졸업한 뒤 버지니아대(UVA) 로스쿨로 진학했다.
그러나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자 해병대에 자원해 중위이자 통신 장교로 복무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전장에서 싸웠다.
이후 주로 해군에서 근무하며 해군 장관으로 재임했고, 연방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상원 군사위원장을 맡는 등 군사통으로도 명성을 날렸다.
2001년 11월에는 2003년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고 대통령이 이 해를 ‘한국 이민의 해’로 선포토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공동으로 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워너 전 의원은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 남편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워너는 7번 결혼한 테일러의 6번째 남편으로 1976년 혼인했지만 1982년 파경을 맞았다. 테일러는 워너가 상원 의원직에 몰두하면서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워너 자신도 테일러를 포함해 3번의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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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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