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애창곡 - 고일주 (59, 센터빌, VA)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나/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나의 애창곡은 1948년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이다.
이 노래가 애창곡이 된 것은 아버지가 내가 10세 되던 해인 1972년 8월1일 새벽에 주무시다가 고혈압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즐겨 불렀던 곡이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는 50세, 어머니는 39세였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것은 어머니가 서울 노량진에 있는 한옥 대청마루에서 이불을 꿰매며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는 장면이다. 당시 장마라 비가 오고 있었는데 정말 처량해보였다.
그 이후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노래를 부르다가 언젠가부터 이 노래가 내 18번이 됐다. 노래를 부르러 노래방에 친구들과 함께 가면 꼭 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나는 2013년에서 호주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간병사로도 일하고 픽업 스토어에서도 근무했다. 호주 시드니에 살 때만해도 친구들과 노래방도 자주 가곤 했는데 미국에 와서는 그럴 기회가 적었다. 왠지 미국에 사는 우리 한인들이 바쁘게 보여졌다.
기회가 되면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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