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애창곡- 주수남 (스프링필드, VA)
한국에서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징집돼 카투사로 근무하던 1960년대의 일이다. 일과가 끝나면 내무반에서 통기타로 동료사병들과 함께 불렀던 팝송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곡이 바비 베어(Bobby Bare)의 ‘Detroit City’이다.
60년대 중반의 한국은 정치적 혼란과 가난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무작정 상경 하던 때였다. 미국도 미소 냉전이 시작된 후 베트남전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전선으로 내몰렸다.
이 곡은 미 남부에 사는 한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 디트로이트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며 느끼는 고뇌, 후회와 번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젯밤 꿈에 난 디트로이트에 갔었네. 고향에 목화밭을 보았고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사랑하는 연인을 봤네. 여러 해 타향살이로 내 인생을 그냥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아 고향에 가고 싶다.”
가사 내용이 그 당시의 어렵고 혼란스런 사회상을 잘 표현한 노래로 특히 타국에 파견된 병사들에게는 크게 애국심과 귀향을 고무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빌보드차트에서도 계속 상위에 올랐던 곡이다.
그 해 공교롭게도 내가 근무하던 미 1군단 사령부의 위문단 공연이 영내 체육관에서 열렸는데 같은 내무반 동료들의 아우성에 가까운 권유로 생전 처음 많은 미 병사들 앞에 서서 노래하게 됐다. 공연 마지막 쯤 나는 통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랐다.
‘디트로이트 시티’를 신나게 부르는 중 마지막절 가사에 “I wanna go home, I wanna go home, Oh How I wanna go home” 구절을 애절하게 마무리 하려는 순간 장내 병사들이 함성에 가까운 합창을 하고 있었다.
오하이오, 텍사스, 버지니아, 메릴랜드 등 출신 고향은 다 달랐지만 낯선 이국 땅, 한국이란 맹방을 위해 국가의 부름에 무조건 응했던 미국의 피 끓는 젊은이들과 때를 함께했던 그 때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60년 가까이 지난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가끔씩 기타를 메고 내 애창곡이 되어버린 이 곡을 부르며 지금은 모두 80 가까운 노인이 되었을 내무반 미군 동료병사들인 데니스 메이스, 랜스, 번하트, 쇠후롯, 버크 등을 떠올린다. 베테랑스 데이(Veterans day)가 들어있는 11월의 가을날, 옛 전우들을 생각하며 오래된 기타를 꺼내 연주하며 노래해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