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은 70대 초에 부인을 암으로 잃었다. 처음 한주 동안은 장례식 절차와 방문객들로 바빠 정신 차릴 여유도 없었다. 대사를 마치고 텅 빈 집에 혼자 있어보니 외로움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집안 곳곳에 아내의 냄새와 온기, 숨결이 젖어있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집중이 안 되고, 음식 차려 먹을 의욕도 사라졌다. 할 수 없이 집을 세주고 근처 딸의 집으로 들어갔다.
교회도 나가고, 골프도 치고, 헬스센터에서 운동도 하지만 그저 그때뿐이었다. 석 달이 지나도 울고만 싶고 아내 생각만 나서 사는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꿨다. 아내와 만나는 꿈이었는데 너무나 좋아서 꿈속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아내도 환히 웃으며 “나는 잘 있으니 당신도 잘 살라”고 했다. 그 꿈은 그를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내와 다시 만날 때까지 외롭지 않게 살 거라고 다짐했다. “꿈이 약이었어요.” 그가 내게 던진 말이었다.
우리 모두 꿈을 꾼다. 꿈을 안 꾼다고 하면 그건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잠은 신체와 마음을 쉬게 만들어 우리를 죽지 않게 만든다. 쉬는 중에도 마음을 관리하는 뇌의 일부는 활발히 활동한다.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며 자는 잠인 램 수면 중에 뇌는 기억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비 램 수면과 번갈아 반복되는 램 수면은 전체 잠의 20-25%를 차지한다. 램 수면은 얕은 잠으로 보통 꿈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 비 램 수면은 깊은 잠으로 꿈은 꾸는데 기억하지 못한다.
꿈이 무엇이고 왜 꾸는가에 대한 시원한 답은 아직 없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무의식 속에 묻어둔 어두운 욕망, 폭력성 등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 자는 동안 꿈을 통해 새어나온다고 했다. 칼 융은 욕망, 공격, 폭력성은 물론 깨어있는 동안 일상에서 경험한 모든 내면의 활동이 꿈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믿었다. 반면 하버드대학 정신과의사 앨랜 홉스는 꿈이란 하루 동안 뇌 속에 쌓인 정보들을 수면 중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로서 아무런 의미 없는 감정의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우리는 유쾌한 꿈, 위로의 꿈, 무서운 꿈 등 수많은 꿈을 꾸며 산다. 꿈은 주로 몽롱한 의식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 거리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발생하므로 비이성적, 비합리적, 비현실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꿈은 경험과 생각을 업그레이드하여 창조적 영감을 주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해주는 점쟁이 역할도 하며, 마음을 다듬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기능도 있다. 이렇게 신비스런 현상이기에 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해몽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민족, 문화권, 종교에 상관없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 꿈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각몽이 관심을 끌고 있다. 자각몽은 자고 있는 동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꿈이다. 비교적 뚜렷한 의식상태에서 의도적으로 꿈을 설계하고 만들어 내는 자각몽 연구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2004년 심리학자 스티븐 라버지 박사는 자신에게 맞고, 자신이 원하는 꿈으로 창조적 영감을 얻거나 스트레스 완화 심리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꿈에 대한 명백한 이론은 없다. 우리는 그저 낮 동안 경험한 즐거움, 슬픔, 두려움 같은 내면의 표현들이 꿈이라 생각하면 속이 편할 것 같다. 앞 지인의 꿈은 치유의 경험이다. 죽은 아내가 꿈에 나타나 위로하는 말에 슬픔과 외로움, 어쩌면 죄책감에서 해방되었을지도 모른다. 위로가 섞인 좋은 꿈은 정신과 약물이나 상담보다 더 효과가 있는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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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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