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토맥포럼서 백창익씨 “아버지 백낙준 박사, 한국교육 주춧돌 마련”

백낙준 박사의 막내아들 백창익 씨가 포토맥 포럼에서 ‘내가 잊지 못할 사람’ 아버지 백낙준 박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2대 문화교육부 장관,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를 막내아들 백창익 씨는 한국교육의 주춧돌을 마련해 한국의 교육수준을 올렸다고 기억했다.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백창익 씨는 8일 설악가든에서 열린 포토맥포럼에서 ‘내가 만난 잊지 못할 사람-아버지 백낙준 박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백낙준 박사는 1895년 출생해 미국 파크대학교 역사학과 졸업, 프린스턴 신학교·대학원을 거쳐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희 전문학교 교장을 지낸 후 연세대학교 초대총장이 됐으며 1950년 문화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참의원 의장을 지냈고 1960년대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백 씨는 아버지가 중학교 재학 당시 조지 메큔 선교사를 만나 신성소학교의 교사가 된 사연, 1913년 중국 천진으로 가 4년 동안 공부한 사연, 1916년 미국 샌프란스시코에서 공부한 사연 등을 소개했다.
백 씨는 “아버지는 대한교육연합회를 하시면서 처음으로 홍인인간을 이념으로 삼았다”면서 “1950년 제2대 문화교육부 장관을 2년 5개월 동안 지내면서 의무교육제 실시, 지방에 국립대학교 설립, 지방 교육자치제를 시작해 한국 교육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백 씨는 “아버지는 문교부 장관시절 전쟁이 발발하자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교육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아무데나 모아서 가르쳐라”면서 “교과서가 없으면 인생을 가르쳐라. 무조건 가르쳐라”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너무 바쁘고 48세에 얻은 막내아들인 저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이 별로 없지만 가끔 음식을 만들어 주시면서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것이 기억난다”고 아버지를 회상하기도 했다.
끝으로 백 씨는 조병화 시인의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의 시를 읊으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이날 행사에는 포토맥포럼 회원 20여명을 비롯해 권세중 워싱턴 총영사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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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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