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정상을 무려 17번이나 정복한 네팔출신의 50대 셰르파가 바슬의 자기 집에 ‘캉그리 익스피어리언스’라는 고산등반 안내 회사를 차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캉그리는 네팔어로 산이라는 뜻이다.
히말라야뿐 아니라 세계 6대주의 7대 최고봉을 모조리 섭렵한 최초의 네팔인인 락파 리타 셰르파(58)는 20여년간 일해 온 시애틀 등반회사 ‘알파인 어센트 인터내셔널(AAI)’을 지난해 떠나 독립했다고 시애틀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난 40년간 등반대 포터로, 가이드로, 매니저로 일하며 숱한 위기를 넘긴 락파는 이젠 영육간에 피곤하다며 네팔에 있는 친동생 카미 리타 셰르파(53)를 불러와 가이드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카미는 지난 5월 에베레스트를 28번째 올라 자신의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에베레스트 골짜기 테임 마을에서 태어난 락파는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셰르파가 된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8남매의 장남인 그는 역시 셰르파였던 부친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은 후 열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대신 나섰다고 설명했다.
지난 1990년 에베레스트 초등에 성공한 락파는 그해 AAI의 토드 벌슨 대표가 이끈 등반대에 가이드로 고용된 것을 계기로 AAI에 정식직원으로 채용됐고 2000년 가족을 데리고 시애틀로 이주했다. 세 자녀 중 둘은 간호사이고 하나는 치과의사 보조라고 락파는 자랑했다.
그가 에베레스트 등반대 가이드로 일한 마지막 해는 2014년이었다. 그해 등반대의 짐을 지고 악명 높은 쿰부 빙폭 빙하 길을 20~30 차례 오르내리던 셰르파 16명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베이스캠프에 있던 락파가 현장에 맨 먼저 올라가 5피트 깊이의 눈을 파헤치고 동료 셰르파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자신의 삼촌도 끼어 있었다고 했다. 올봄에도 쿰부 빙폭에서 눈사태가 일어나 사촌동생 3명이 숨졌다. 그중 한명은 자신과 똑 같은 이름이라고 락파는 말했다.
락파는 시애틀 지역에 250여명, 서북미 전역에 500여명의 셰르파가 활동하고 있다며 ‘서북미 셰르파 협회’라는 단체도 있다고 소개했다. 네팔 부족 중 하나인 셰르파는 주로 히말라야 등반대의 가이드나 포터로 일하며 ‘셰르파’라는 부족 명을 성씨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북미 셰르파 협회의 회관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네팔인 12명을 모아 3일 일정으로 Mt. 베이커 정상 등정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회비가 1인당 1,300달러인 이 등반의 참가자들은 등산 애호가이지만 초보자라며 이들 중 셰르파는 한 명뿐이라고 덧붙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