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피난 나온 분이다. 피난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딸 다섯을 키웠다.
나의 어린 시절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방 안에 연탄난로가 있고,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한 엄마는 항상 아랫목에 누워 계시고, 자식들은 모두 다리를 이불 밑으로 넣고 수다를 떤다. 그러다 졸리면 자러 갔는데, 지금처럼 각자의 방이 있는 것이 아니고, 딸 다섯 모두 한 방에서 일렬로 잤다.
아버지와의 겨울 추억은 많지만, 그 중에 크게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국수를 먹겠냐고 묻곤 하셨는데, 딸들은 모두 그림같이 앉아서 “누가 만들어주면”이라고 대답을 했고, 아버지는 집 뒤쪽에 있는 장독대로 가서 동치미 국물을 한 바가지 퍼 오셨다. 장독대를 가면서 국수 끓일 물을 올려놓고, 돌아오면서 어느새 국수를 끓여 동치미 국수를 만들어 방으로 갖고 오셨다.
겨울 내내 동치미 국수든 호빵이든 빨간 김칫국물에 국수를 말던 아버지는 밤마다 뭐든지 만들어 딸들과 먹고 놀았다.
또 다른 일화는, 아버지는 겨울에 외출했다 돌아오실 때는 항상 귤을 사오셨다. 딸 다섯이 먹는 걸로 싸울까 봐, 아버지, 엄마 그리고 딸 다섯 모두 같은 숫자로 나눠 주셨다.
막내 동생은 그 귤을 순식간에 다 까먹고, 귤껍질에 노랗게 변한 손을 내밀며 귤을 더 달라고 했다. 그럼 아버지는 당신의 할당을 막내에게 주곤 하셨다.
뭐든지 아껴 먹는 큰 언니가 숨겨 놓은 귤은, 숨긴 것을 잘 찾는 둘째 언니가 훔쳐 먹곤 했다. 그럼 큰 언니는 본인 귤을 내놓으라고 뒤로 넘어갈 정도로 아버지 앞에서 울곤 했다.
그런 아버지가 이 맘 때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연락 받고 급하게 가 보니 중환자실에 계셨다. 간호사는 귀는 들으실 수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머릿속이 뿌였다. 가족끼리 ‘사랑한다. 미안하다’를 내뱉던 시대도 아니고,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무척 당황하고, 동시에 또 마음은 급해졌다.
아직은 따뜻한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렇게 잘 키워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때처럼 오늘 날씨도 에인다. 오늘은 나도 동치미 국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버지와의 약속처럼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문의 (703)625-9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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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정 갤럭시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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