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그래픽용 반도체 제조사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2006~2007년 무렵 중대 결단을 내렸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컴퓨터의 두뇌 역할도 일부 맡을 수 있는 ‘범용 연산 그래픽처리장치(GP GPU)’를 개발하기로 했다. 그간 GPU는 주로 컴퓨터 게임용 입체 영상 데이터를 처리하는 보조적 칩셋에 불과했는데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매출 성장에 한계를 안고 있었다. 젠슨 황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처럼 범용 데이터도 처리할 수 있는 GPU 개발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GPU는 이제 인공지능(AI) 구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전자두뇌로 자리 잡았다.
엔비디아는 유명 물리학자나 수학자의 이름을 GP GPU 제품 명칭으로 써왔다. 2007년 첫 출시된 제품명은 ‘테슬라’였다. 이후에도 페르미·맥스웰을 비롯해 호퍼·블랙웰 등의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초로 천문학자의 이름이 선택됐다. 2026년 출시할 차세대 GP GPU에 ‘루빈(Rubin)’이라는 코드네임을 붙인 것이다. 우주 연구의 혁신을 일으킨 여성 과학자 베라 루빈의 성명에서 따온 명칭이다. 루빈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심층 연구로 우주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증명했다.
엔비디아가 차기 GPU의 코드네임으로 루빈을 꼽은 것은 그만큼 혁신 기술을 구현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루빈 GPU에는 최초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적용된다. 젠슨 황은 2025년 5세대 HBM 기술의 GPU ‘블랙웰 울트라’를 내놓기로 했는데 다음 해에 더 진보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이는 2년 주기였던 신제품 개발 주기를 1년으로 단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사를 따돌리려는 신기술 속도전 전략이다. 이에 맞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6세대 HBM 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6세대 칩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총력 지원에 나서야 한다. 파격적인 세제·예산 지원과 규제 혁파로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민병권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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