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형사재판의 유죄율이 99.9%라고 한다. 일본 검찰이 확실하게 유죄로 판정받을 수 있는 사건만 기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면서 구속 기간마저 쉽게 연장할 수 있는 일본 형사재판의 후진적 관행이 숨겨져 있다. 스오 마사유키 감독의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99.9%라는 유죄율이 억울하게 기소된 0.1%의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비정상적 현실을 조명해 주목받았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도 압도적 숫자가 등장했다. 조국혁신당은 지난 20일 전당대회에서 조국 의원을 99.9% 찬성률로 신임 당대표로 선출했다. 단독 입후보한 탓에 찬반 투표로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례적 수치다. 더불어민주당 전대에선 20일(제주·인천), 21일(강원·대구·경북) 진행된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에서 이재명 후보가 91.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 후보가 2022년 8월 전대에서 세운 역대 최고 득표율(77.7%)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민의힘에선 “공산당 투표를 보는 것 같다”는 힐난이 쏟아졌고, 민주당에서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강성 당원을 향해 “집단 쓰레기”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굳이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의 선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강성 팬덤을 활용한 특정 정치인의 독주가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중요한 건 득표율이 아니다. 0.1%의 의견이 99.9% 의견보다 올바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국혁신당은 강성 지지층이 바라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퇴진’만 외치기보다 지속가능한 정당으로의 변모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의석수를 앞세워 탄핵 명분을 쌓고 있는 민주당도 민생부터 챙기는 수권정당임을 입증하는 게 급선무다. 2012년 8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전대에서 박근혜 후보는 83.9%의 압도적 득표율로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이를 바탕으로 그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집권 후 당내 소수의 건전한 비판마저 외면했던 박근혜 정부의 말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회경 한국일보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