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얼마나 큰지 그 키를 가늠하려고 몇 발짝 뒤로 물러서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혀도 그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집을 사기 위해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주변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모퉁이 집,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처음 와 보는 낯선 동네인데도 분명히 왔었던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데자뷔?
이사 들어와 이 집에서 며칠을 살고 나서야 그 나무가 어린 시절 우리 집 앞 공터에 있었던 나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나무는 어린 우리가 두 팔로 끌어안아도 그 품의 반도 가름할 수 없는 커다란 나무였다. 매미들이 시원하게 울어대는 여름밤마다 우리들은 술래잡기나 숨바꼭질하며 나무 주변을 뛰어다녔다. 엄마들은 나무 아래의 평상에 모여 앉아 나물을 다듬거나 조물조물 손으로 무엇인가 하며 눈으로는 우리들 뒤통수를 좇으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곤 하였다. 어린 시절의 그 나무는 그 아래 앉아 계시던 엄마처럼 언제나 든든한 내 편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작은 방 창에서는 그 나무가 잘 보였다. 창가에 서서 그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시간이, 그 여름밤의 수런거림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옛집의 평상을 옮겨와 나무 아래 놓고 앉으면 그리운 엄마가 보이고 엄마가 다듬은 나물들이 소복하게 쌓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온 집안을 뒤흔드는 낯선 소음이 잠을 깨웠다. 그 소리를 찾아 창밖을 내다보니 집 앞에 나무 자르는 트럭이 와 있고 트럭에 달린 긴 기구로 나무를 꼭대기부터 조금씩 잘라 내고 있었다. 그제야 나무 밑동 부분에 빨간색 노끈이 둘러 매져 있던 것이 생각났다. 해마다 태풍 피해가 다른 지역보다 잦은 플로리다에서는, 집 가까이에 서 있는 나무가 집으로 쓰러져 큰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래서 나무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약해진 나무들은 빨간 끈으로 묶어 두었다 하나씩 잘라 내고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걸려 위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잘려 나간 나무는 저녁이 되자 웅크리고 앉을 수 있는 높이의 그루터기로 남았다. 나무 자르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어둑한 시간에 밖으로 나가 그 그루터기 위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한쪽 구석은 썩어서 비어 있었지만 그래도 어른 서너 명이 등을 맞대고 둘러앉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그루터기였다. 주위로 톱밥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엄마 생각이 나면 차 한잔 들고나와 앉아 있을 수는 있겠다고 마음을 달래며 나무의 드러난 속살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그다음 날 일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그나마 있던 그 그루터기마저 모두 파내어지고 그 자리에 멀치(mulch)를 부어 작은 봉분을 만들어 놓았다. 고향의 한 조각을 불러다 주던 나무가 모두 잘려 나가고 작은 무덤으로 남은 그 앞에서, 귀중한 것을 빼앗긴 듯 괜히 속상하고 억울했다. 가끔 꺼내 보면 외롭고 피곤한 마음을 다독여 주던 고향 집 마당의 추억이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텅 비어버린 그 공간에서 자꾸 헛헛한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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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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