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씰드 쏘일’ (The Sealed Soil) ★★★ ½ (5개 만점)
▶ 천근만근의 무게로 내리 누르는 삶속에 사회와 관습에 반항하는 젊은 여자의 무언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아
1979년에 일어난 혁명 전 이란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18세 난 여자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남성 위주의 이란 사회와 고리타분한 관습에 의해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압박 받는 이란 여자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란 영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여자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 천근만근의 무게로 내리 누르는 사회와 관습에 반항하는 젊은 여자의 무언의 투쟁을 마치 기록영화를 만들 듯이 사실적으로 화면에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혁명 전 1976년에 여자 영화학도 나르바 나빌리(각본 겸)가 단 엿새 만에 찍은 것으로 나빌리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필름을 옷가방에 숨겨 국외로 빠져 나가 뉴욕의 영화학교에 다니면서 편집을 완성했다. 음향효과와 배우들의 대사도 이 때 완성했다.
나빌리의 말처럼 이 영화는 프랑스의 절약형 감독 로베르 브레송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한데 나빌리는 비 배우들을 사용하면서 롱 샷과 롱 테이크로 촬영, 화면 회전도 극단적으로 절약하고 있다. 나빌리의 확신과 정열의 산물로 이번에 디지털로 복원돼 상영된다.
곧 재개발에 들어갈 이란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 사는 18세난 처녀 루-베크헤이르(플로라 샤바비즈)의 일상은 1년에 365일이 똑 같다. 아침에 일어나 옷 입고 불 피워 부모와 어린 동생들의 음식을 마련하고 학교에 가는 동생들의 복장을 챙겨주고 닭 모이를 주고 부모가 들일 나가면 집안 청소를 하는 일을 매일 같이 반복한다.
거기다가 동네 냇가에 나가 빨래를 하고 먹을 물을 길어오면서 고장 난 영화화면처럼 이렇게 따분한 일을 반복하는데 루-베크헤이르의 얼굴이 마치 인형처럼 표정이 없어 따분한 일상이 몇 곱으로 더 따분하게 느껴진다.
이런 일상의 반복은 숨어서 책을 읽는 루-베크헤이르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투쟁심과 반항심을 키워주는 작용을 하는데 거의 대사도 없어 여자의 이런 일상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루-베크헤이르는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겼는데도 선보는 남자마다 잇따라 퇴짜를 놓는다.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왕따를 당한다. 심지어 동네 이장이 찾아와 루-베크헤이르에게 “네 엄마는 7살 때 시집와 네 나이 때는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면서 “잘 생각해 봐라”고 충고까지 하지만 처녀의 고집을 꺾지는 못한다. 이런 고집은 루-베크헤이르의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무시하고 그 것들에 도전하는 반항심과 투쟁심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 루-베크헤이르가 또 다시 선을 보게 됐다. 여기서 참다 참다 못한 여자의 절망감이 처음으로 밖으로 분출된다. 루-베크헤이르는 선 볼 날 입을 옷을 트렁크에서 꺼내 마당 바닥에 내던지며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친다. 광란에가까운 루-베크헤이르의 비명과 몸부림을 본 여자의 부모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루-베크헤이르가 귀신이 들렸다면서 무당을 불러 귀신 내 쫓는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이 여자의 따분한 일상은 오늘도 변함없이 다시 반복된다.
영화 중반쯤에 루-베크헤이르가 혼자 냇가 숲에 이르렀을 때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데 이 때 처녀가 옷을 벗고 드러난 상반신을 빗물에 맡긴다. 여자의 짧은 자유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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